이생-내 앞의 생(길수 이야기)

by 김정욱

14-15. 나도 한때 지난 기억들이 지워지길 바란 적이 있었다.


그 기억들과 함께 미련이나 아쉬움 희망따위 모두 버리고, 남은 시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 가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편해지고 깨어있는 시간은 길어지니, 지난날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이 확실히 깨달아 지기도 했고, 스스로 서러움에 하루 종일 목이 잠기기도 했다.

"최 길수 어르신. 오늘 2시에 아드님 중만씨에게 전화 왔습니다."

또 한 달이 지났다. 못된 놈, 나쁜 놈, 얼어 죽을 놈. 통화 좀 하면 어때서. 에잇!

순간 또 울화가 치민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쩔 것인가. 시설에 들어 온 이상 죽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내 나이 75세. 요양원에 들어 온지 벌써 3년을 지나고 있었다.

4월. 창 밖엔 봄이 한창 아우성이다. 아마 풀냄새 바람 냄새가 다를 것이다. 가지마다 잎을 내밀고 꽃봉오리가 터지고, 보드라워진 흙 속에서 새싹들이 저마다 온 힘을 다해 세상을 향해 솟아오를 것이다.

"담에 전화 오면 꼭 날 바꿔줘요. 내 할 말이 있다고"

"알겠습니다. 어르신. 나가고 싶으시죠?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돼요"

이 무슨 뚱단지같은 소린가. 그러고 보니 그런 마음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무렴. 내가 자식 놈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할까봐? 에잇! 기분이 꿀꿀해졌다.

민수 형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문득 건너온 세상이 궁금해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생-내 앞의 생(길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