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7월 말,
사람들로 북적대는 버스 터미널은 뜨거운 열기와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오랜만에 서울에 온 명자는 멍하니 창 밖 풍경을 바라보다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명자야. 여기야"
은이였다.
재운의 동생. 은이. 20여년 만에 재운의 소식을 전해준 은이.
"한참을 생각했어. 많이 고민도 하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너한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제 내 역할은 여기까지. 니 마음 가는 대로 해. 네 원망은 안할 거야"
"재운이는 어디에 있는데, 지금?"
"마리아 집에 있어.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난 결혼해서 서울에 살아. 오빠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널 보고 싶어 해. 그러니까 너두 너무 무거운 맘 가질 거 없이 그냥 한번만 만나 줘. 그뿐이야. 니가 맘 안 내키면 안 만나도 되지만"
마리아집은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연고 없는 노인들의 공동 생활체였다.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농사 짓고 있는 텃밭과 과수원이 딸려 있었다. 아담한 조립식 건물이 두 채. 여성의 집과 남성의 집이 나뉘어 있었고, 산을 등지고 널찍한 터에 자리하고 있었다. 맘 좋은 자선가가 기부한 사유지라 했다.
재운은 그곳에서 수녀님을 도와 밭 일부터 집안 일까지 모든 잡일을 도맡아하는 집사 일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재운이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까? 맑고 푸르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명자야. 정말 명자구나! 내 친구 명자 맞는 거지?"
"재운아. 너 어떻게 된거야?"
"은이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거 신경쓸 거 없어. 보다시피 난 잘 살고 있구. 너두 잘 사는 거지?"
"응, 그래. 근데 너 괜찮은 거 맞지? 너무 말랐잖아?"
재운은 깊어진 눈으로 웃었다.
'넌 여전히 겁이 많구나. 걱정 마. 이제 너두 보았으니 난 더 이상 바랄게 없네' 재운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