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두 번의 생

by 김정욱

2-12. 어린시절,


명자와 은이, 재운이는 충청도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는데 읍에 하나뿐인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명자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오빠가 있었지만 은이, 재운이와 산으로 들로 어디든 붙어 다녔다. 여고, 남고는 따로 나왔지만 은이, 재운이는 명자의 절친, 죽마고우였다.

고3이 되자, 명자네는 명자 오빠가 대학을 다니고 있던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공부를 꽤 잘했던 재운이는 은이의 연년생 오빠로 마땅히 대학을 가야 했으나, 가정에 무심한 아버지, 항상 아팠던 엄마를 져버리고 집을 떠날 수 없어서 졸업을 하고도 시골에 남고 말았다. 1년만 있다가 돈을 모아 꼭 대학을 가서 선생님이 되겠다고, 아이들을 위해 좋은 동화를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재운이는 시골에 남아 농사일, 밭일, 품팔이를 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명자와 재운이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키웠으나 그들은 너무 어렸고 너무 세상을 몰랐다.

명자가 대학 1학년 여름, 덜컥 임신을 하자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아빠와 오빠가 재운을 닥달하고 벼랑으로 몰아 세우고,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다짐을 받을 때까지 온 갖 수모를 당한 재운은 결국 뜻을 꺽고 말았고, 명자에게 약속하고 약속했던 그 수많은 것들을 져버리고 말았다.

이제와 생각 해 보면, 그때 어른들이 어리고 미성숙한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도와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명자도 행복하고 재운도 행복하고 부모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재운이 똑똑하고 성실하고 맘이 따뜻한 아이였으니 분명 좋은 아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을텐데, 그땐 왜 어른들이 그들을 떼어 놓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명자는 오랜 시간 우울에 빠졌다.

이 세상 어떤 일도 시시해 보였으며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시시했다.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어떤 일도 이루고 싶지 않았다.

모래사막처럼 변해 버린 가슴에는 꽃도 나무도 새도 따스한 바람도 없었다.

당연히 공부도 중단했고 컴컴한 방에서 10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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