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던 때가 있었나요?
‘세계 라디오의 날’이 있다는 걸, 어제 라디오를 들으면서 처음 알았다. 유네스코가 ‘유엔 라디오’가 설립된 1946년 2월 13일을 기념해 지정했다고 한다. 별별 날이 다 있구나 하고 흘려들었는데 이 글을 쓴다는 핑계로 취지를 찾아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송신탑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서도, 태평양의 오지에서도, 민주주의를 요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억압받는 나라에서도. 최신 문명의 도구들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라디오만큼은 전파를 통해 우리 곁을 지키며 필요한 정보와 즐거움 동시에 평화와 인권의 목소리를 널리 퍼트리고 있기에 그 역할과 의미’을 되새겨 보자는 뜻에서 지정했다고 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라디오를 켠 이유는 요즘 읽고 있는 소설 때문이었다. 소설 속 인도에 사는 가난한 쌍둥이 형제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라디오'가 나온다. 주워온 라디오를 고쳐 축구 경기를 듣거나 인도 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나라의 소식을 듣는다. 형제는 매일 밤.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흘러나오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잠든다. 두 형제에게 라디오는 즐거움을 넘어 미지의 세상을 꿈꾸게 한다.
내게도 라디오가 밤을 지켜주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밤, 불 꺼진 방안에 누워 라디오를 들었다. 미리 공테이프를 끼워놓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며 녹음 버튼에 손을 올려놓은 채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밤. 네모난 엽서에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사연을 써 내려가던 빛나던 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난한 수험생의 밤, 온종일 갓난아이와 하루를 보내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 무겁게 내려앉은 밤까지. 라디오와 함께 했던 수많은 밤들이었다.
원하면 무엇이든 보고 들을 수 있는 핸드폰이 있어 라디오를 잊고 살았었다. 이제는 주파수를 맞추려 버튼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안테나를 쥐고 있을 필요 없이 앱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지만 불편했던 그때가 그리운 건 왜일까. (주파수가 딱 맞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언제부턴가 SNS와 TV에 펼쳐진 타인의 화려하고, 멋진 삶에 괜스레 공허해질 때가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데 자꾸만 혼자 멀리 밀려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 지금 뭐 듣는 거야?”
“응? 라디오. 엄마 학교 다닐 때 엄청 많이 들었어.”
불이 꺼진 방 안에서 혼자 듣던 라디오를 이제 아이와 함께 듣는다. 디제이의 목소리를 빌려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한 직장에서 32년 동안 근무 후 안식 휴가를 얻어 제주도에 여행을 왔다는 직장인, 심야버스를 운행하며 퇴근길을 책임지고 있는 버스 기사님, 사춘기 딸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엄마의 사연까지. 그래,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일 테지.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의 사연에 나도 모르게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
어느새 귓가에 디제이의 마지막 말이 아득하게 들린다.
“여러분,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어요. 오늘 하루도 잘 해내셨어요.”
기분 좋은 잠이 찾아온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가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