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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잘 살겠다고

예쁜 쓰레기도 결국엔 쓰레기다

by 맹그리

요즘 나의 소소한 낙 중 하나는 토요일 밤. 맥주를 마시며 넷플에 새로 올라온 ‘독박투어’를 보는 것이다. 제2의 ‘한비아’를 꿈꾸며 서른 살의 첫 시작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하려 했을 만큼 여행을 좋아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그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토끼 같은 두 딸을 데리고 다니기도 놓고 가기도 여러모로 쉽지 않아 그 마음은 잠시 접어 둔 상태다. 그래서 그런지 합법적(?)으로 떠난 유부남들의 여행기가 더 유쾌하고 자유롭게 느껴진다. (다른 의미에서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주 ‘독박투어’의 여행지는 ‘이집트’였다. 가장 깊었던 건 ‘왕의 무덤 피라미드’였다. 고대이집트인들은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서도 이어진다고 믿었다. 무덤은 사후에 살아갈 또 다른 궁이자 신전이었기에 내부 장식에 엄청난 공을 들였고, 진귀한 보물까지 가득 넣었다. 그 때문에 ‘피라미드’는 ‘도굴꾼’들의 끊임없는 표적이 되었다. 오늘날 관람객들이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길 역시 피라미드를 도굴했던 도굴꾼들이 내놓은 길이라고 하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할까.


최고조로 도굴이 자행되던 때, 도굴 실력을 과시하려 그들이 누워있는 관에 자신의 이름을 보란 듯이 새겨놓고, 어둠과 추위를 피하려 피라미드 안에 있는 미라의 뼈를 부러트리고, 수의를 벗겨 땔감으로 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내세의 평온과 안녕을 바라며 장식하고 함께 넣어둔 보물들이 그들을 오늘날까지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이삿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요즘 집 정리가 한창이다. 캠핑 갈 때 쓰겠지 하며 모아둔 다양한 음식점들의 이름이 찍힌 일회용 수저와 포크, 젓가락. 엄마한테서 받은 후 번거롭다는 이유로 제대로 써보지도 않은 믹서기와 약탕기, 둘째 크면 입힐 거라고 놔둔 이제는 유행이 지나버린 옷가지, 그 한 줄이 뭐라고 줄줄이 꽂아둔 책까지.


모두 ‘아까워서, 놔두면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은데..’와 같은 ‘쓸모’를 이유로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물처럼 넘겨준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보물이라 믿었던 것들이 구석구석 박혀 삶을 무겁게 한다.


‘얼마나 잘 살겠다고, 이 많은 걸 이고, 지고 산 거야.’


1년 동안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옷은 과감하게 헌 옷 수거함에 버리고, 누군가가 쓸 수 있는 물건들은 경비실에 부탁해 나누고, 버릴까 말까 주저되는 것은 모두 버렸다. 그렇게 주말 내내 물건들을 정리했다. 텅 빈 찬장이며 장롱, 베란다를 볼 때마다 몸과 마음에 상쾌한 바람이 분다.

그때 필요하지 않던 물건이 지금 다르며 미래라고 또 다를까.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오직 물건뿐일까. 간절함이든 기대이든 욕심이든 지금의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면 지체 말고 버리자. 때론, 최선을 다해 버리는 일이 삶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KakaoTalk_20250219_211221453.jpg <증식하는 것 같은 인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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