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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지, 나한테도 다정할 수 있다는 걸

by 맹그리

회사에 다닐 때였다. 업무 특성상 고객과 만나는 외부 미팅이 많았다. 잦은 야근 보다 끝없이 치고 들어오는 업무보다더 힘들었던 건 그 미팅들이었다. 낯가림을 숨긴 채 여유로운 척 웃고있었지만, 머릿속은 다음 할 말을 찾아 헤매느라늘 바빴다. 눈 맞춤이 부담스러워 평소 잘 마시지 않는 물을 마시거나 열심히 메모하는 척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지독한 인정중독자

연차가 쌓이면서 어색한 순간을 견디는 것에 여유가 생겼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함께 커졌다.

같은 공간, 같은 자리, 같은 직급을 달고 협력관계로 마주 앉았지만, 결국 그들은 내게 돈을 주고 일을 맡기는 ‘고객사’였다.

농담처럼 가볍게 툭 내던진 상대의 질문에 결을 맞추면서도 신뢰를 줘야 하고, 이 일에 적임자가 ‘나’ 임을 어필하면서 동시에 확신을 줘야 하며 겸손이란 이름으로 나를 낮춰야만 했던 순간들.

불행인지 저주인지, ‘초예민’한 나는 공기 중에 미묘하게 흐르는 무언의 말조차 기민하게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또, 지독한 인정중독자여서 상대의 기대를 맞추는 일도,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일도 나에겐 어렵지 않았다. 해가 뜨지 전 출근하고, 다시 해가 뜨기 전 퇴근하는 나날이 반복되던 시간이었다.

호랑이 담배 시절을 살았던 ‘라떼’

갑자기 그때가 떠오른 건 이삿짐을 풀면서 발견한 ‘앨범’때문이었다.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둔 그 앨범은 퇴사 날, 함께 일했던 팀원들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10년이 흘렀지만, 그 앨범을 펼칠 때마다 마음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는다.

누군가는 ‘자기 연민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살았던 가정주부의 ‘라떼는 말이야’로 들릴 수도 있겠지. 물론, 맞다. 요즘 세상은 미래가 뭔지 알까? 싶은 일곱 살조차도 애를 쓰고 사는 세상이니까.

“애써줘서 고마워”

그런데도 나는 왜. 쓸모를 생각하면 당장 쓰기를 멈춰야 할 이 글을, 왜 이렇게까지, 굳이. 굳이, 굳이. 끙끙거리며 쓰고 있는 걸까.

고스란히 사진에 남은 그때의 내가, 여전히 안쓰러워서, 앞에 놓인 벽이 스티로폼인지 시멘트인지 열리는 문인지도 모른 채 맨몸으로 부딪치는 것 말고는 요령이 없었던 내가 애틋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나를 재촉하고 다그치기만 했지, 애틋하게 바라볼 줄 몰랐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한 장의 사진에 머물러 있다. 사무실 안, 창문 너머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과거의 내가,

10년 뒤에 있는 내게 말을 건넨다.


“지금은 행복하니?”

“행복이란 게 별거니. 그래도 덕분에 이제는 나를 챙기면서 살아. 애써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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