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말: 현대의 채권 시장

중앙은행의 역설

by 김민성

1. 신용 기반 경제의 시작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시장 기저에 깔려있는 중차대한 거시 경제적 기조의 변화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2020년대의 채권 시장을 적절하게 비유하자면 '브레이크가 과열된 과적된 트럭을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만 밟아서 멈추려는 상태'이다.



이 관점은 시장을 판단하는데에 상당히 중요하다. 지난 반 세기 동안의 시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저번 글에서 얘기했듯, 폴 볼커가 강력한 매파적 기조로 달러의 위상을 높인 이후 시장은 골디락스를 누렸다. 20세기 중반 횡보하던 시장을 벗어나, 스트레스 테스트를 완료한 시장은 반 세기 가까이 유례없는 강세를 구가했다. 1980년을 기점으로 본다면, 1940년부터 1980년까지 40년간 다우 존스의 수익률은 454%, 1980년부터 2020년까지의 수익률은 3400%이다. 수익률 차이가 엄청나다.

image.png 미국 GDP의 로그값 변화 추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경제 성장률이 완만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이 1980년 기점으로 수직 상승을 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중반의 경제 성장률이 훨씬 높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식 시장, 조금 더 넓게 말하자면 주식 시장을 포함한 리스크 온 자산의 시장 규모를 확장시켰을까? 바로 신용의 창출이다. 이 기간 동안 급등한 부채가, 레버리지가 되어 자산 시장을 확장시킨 것이다.



2. 개와 주인의 역설


코스톨라니는 주식 시장과 경제가 개와 주인의 관계에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 이유는 주식의 높은 가치는 전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에 있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가 꺾이거나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시장 참여자들은 채권을 포함한 안전 자산들로 대피해왔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이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주식 시장이 강세를 구가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희망에 기반한 신용에 의한 매수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한 경제 성장이 강세를 구가하더라도, 주식 시장에 과열을 보인다면 이 또한 버블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채권을 포함한 안전 자산들로 대피해왔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적 관점의 활발한 국채 시장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로 금융 공학, 온라인 거래, 미 국채의 벤치마크화 등이 맞물렸던 시기이다. 또한 초장기물이 도입된 것은 20년 정도 지났으며, 채권 변동성을 헤징할 수 있는 선물 시장이 형성된 기간도 오래되진 않았다.


이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 자산으로서의 채권,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인식의 틀은 얼마되지 않았다. 반 세기도 되지 않았단 것이다! 전통적인 안전 자산은 현금 그 자체 혹은 금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암호화폐의 위상이 부각되었지만, 난 암호화폐 시장이 반 년간 반으로 그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안전자산이 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안전 자산이 되기 위한 조건은 뭐가 있을까? 난 크게 낮은 변동성과 거대한 마켓 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낮은 변동성에 기반한 헤지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가져야하며 마켓 캡이 거대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시장을 조작할 수 없어야한다.


현금 그 자체와 금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왔다. 하지만 금은 이제 이 조건을 만족하기 어려워졌다.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주식 시장 이상의 변동성을 보이면서 헤지 수단으로써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약 금이 정말로 안전자산의 역할을 하려면 일단 지금보다 훨씬 거대한 마켓캡과 대중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리스크 온 자산들이 레버리지를 등에 업고 크게 성장하는 동안, 금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대략 220퍼센트의 성장만 보였다. 물론 금의 마켓캡이 거대하긴 하지만, 증가한 유동성 및 레버리지에 비해 상대적 규모가 줄어들며 유동성 저수지(Liquidity Reservoir)의 역할이 쇠퇴했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채권 시장의 규모가 커진 것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국채라는 개념은 매우 매력적이다. 국가가 보증하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까지 국가라는 주체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사례는 크게 많지 않기 때문에 미국, 유럽 국가들, 동아시아 국가들의 채권은 상당한 신뢰도와 더불어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었다.

image.png 이란-미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 기준 금리와 10년물 스프레드가 140bp로 벌어지며, 장기 차입 비용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채권이라는 것은 결국 냉정하게 말해서 빚문서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무리 상환 능력이 좋더라도, 당신의 연봉 몇 배의 빚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 3%가 넘는 이자를 내야한다면 부담이 안 될까?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예산은 GDP 대비 35.6%인데, 총 부채는 GDP대비 2.5배 수준이다. 이 말은 국가 예산 20퍼센트 정도의 이자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봉이 5천만원인데, 원금을 제외하고 이자가 연간 천만원이라면 어떨까? 우리가 안전 자산이라고 생각하던 국채가 부채 부담으로 인해 더 이상 안전자산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3. 중앙은행의 딜레마


따라서, 중앙은행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시경제적 문제를 맞닥뜨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적절한 YC를 통해 인플레이션과 장기 차입 비용 조절이 가능했지만, 현대 채권 시장에선 이러한 통화 정책의 효과가 극도로 제한된다. 만약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면 이미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는 민간의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인해 경제가 과도하게 위축되고, 비둘기파적으로 이러한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거나 양적 완화를 시도한다면 과도한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장기 상환 능력에 대한 의문으로 인해 오히려 모기지 금리가 상승하며 차입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채권을 발행해 미래의 구매력을 가져오는 것이 정당화됐다. 그 이유는 잠재 경제 성장률이 이자율과 인플레이션, 혹은 부채 증가 속도보다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보호무역의 태동, 리쇼어링, 신냉전, 에너지 전쟁 등으로 인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세에 있으며 인플레이션은 잡히지 않으며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경제를 성장시켰던 레버리지와 신용 창출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팬데믹 때 시중에 공급된 유동성은 지난 수 년간 인공지능과 로봇, 우주 개발이라는 테마를 등에 업고 전 세계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이러한 기조에 소외된 국가들은 현재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으며, 동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은 강세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인공지능, 로봇, 우주 개발이 어떠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한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로봇, 우주 개발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일까? 최종 소비자인 대중이 이러한 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 대중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볼 시기이다. 결국 중앙은행이 채권 시장 및 거시 경제의 고삐를 놓쳤으며 중앙은행은 더 이상 기수가 아니라 로데오를 하는 카우보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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