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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미 Sep 30. 2023

초보엄마, 덴마크에서 혼이 나다.

분만 후 간호사에게 혼이 났다.

덴마크로 이사를 오고 한 달 만에 임신을 했다.

덴마크어도 문화도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덴마크 엄마들, 그들만의 세계로 입성해 버렸다.



신생아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인권이란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누구나 갖는 가장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권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신생아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출산하기 전까진 아기의 "인간으로서 존엄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랬던 내가 덴마크에서 출산과 동시에 신생아의 인권에 대해 꽤나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는데 이 번엔 그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네 아기는 너희를 닮을 필요가 없어. 이 아이는 이 아이만의 사람으로 클 거야.


지금도 아기가 태어났던 순간이 기억에 뚜렷하다. 한 명의 인간이 내 몸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워서 “오 마이갓” 만 열 번은 넘게 반복했었다. (너무 신기해서였을까, 임신 중 태동을 느낄 때에도 왠지 모르게 외계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덴마크에서는 아기가 나오면 2-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검사 후 바로 엄마 품에 안겨지고 아기는 그때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우리 3인가족이 이틀 동안 묵을 개인병실에 도착해 있었고 우리는 그제야 아기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나와 남편 중 누구를 더 닮았을까? 물론 양수에 퉁퉁 불은 아기의 얼굴은, 그 누구의 얼굴과도 닮지 않았지만 너무 신기한 마음에 아기를 들여다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나이가 지긋하신 간호사선생님께서 귀여운 아기라며 말을 건네셨고, 나는 “감사해요, 아직은 저와 제 남편 중 누구와 더 닮았는지 모르겠네요” 정도의 대답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 돌아온 간호사선생님의 대답이 아직 출산 후 여운이 가시지 않는 나의 정신을 깨웠다.


“네 아기는 너희를 닮을 필요가 없어. 이 아이는 이 아이만의 사람으로 클 거야. 아이를 너와 연결 짓지 마."


쿵.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제일 처음 든 감정은 부끄러움 또는 창피함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살짝 달아오름을 느꼈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도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임에도 내가 혼이 난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은 아마 내가 은연중 아기를, 나와 개별적이지 않은, 나에게 속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분만당시 나는 아기가 아니라 내 장기중 하나가 밖으로 나온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나이 지긋하셨던 그 간호사선생님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던 것 아닐까.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14개월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이따금 “아이의 이런 모습은 누구를 닮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ㅇㅇ는 ㅇㅇ지“ 라며 생각을 멈춘다. 물론 그런 생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내 아이를 나라는 사람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그 모습이 굴절 돼버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할까 봐서이다. 아이가 건강한 자아를 지닌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부모가 아이를 개별적 주체를 가진 한 사람으로 관심 있게 바라봐주어야겠다.


아무리 아이가 이제 한 살을 막 넘긴 아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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