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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미 Nov 01. 2023

오늘 하루, 당신은 몇 명의 아기들을 만나셨나요?

우리는 아기 없는 세상에 산다, 아기를 낳기 전까진.

덴마크에 사는 나와 남편은 대부분의 한국 관련 뉴스를 인터넷으로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편향되거나 과장된, 또는 거짓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의 저출산율에 관한 뉴스는 그런 걱정이 전혀 필요 없다. 지독하게도 낮은 한국의 출산율이 문제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우리가 7개월 전 한국방문 당시 느꼈던 놀라웠던 점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째,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우개로 아이들을 지운 것처럼.

우리는 일 년 만의 한국 방문에 당시 8개월 된 아이를 앞에 매고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우리 아기 외의 아이들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무리 출산율이 낮고 아이들이 없다고 하지만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론 이해도 갔다. 한국의 지하철이나 버스는 유모차를 갖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서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 아기를 동반한 16시간 비행과 시차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매고 걷는 스케줄을 강행했었다. 지하철에서는 정말 여러 어르신들이 다가와 아기를 너무 오랜만에 봤다며 신기해하셨고, 어떤 분들은 반가운 마음에 혹시 아기 발이라도 만져봐도 괜찮은지를 물어보시기도 했다. 옆에 서있던 퇴근길의 어떤 20대 후반정도 되는 남자는 우리 아기를 보고선, 퇴근길 지하철에서 아기가 고생이라며 본인은 왜 아기를 절대 낳지 않을 것인지를 옆 친구에게 작지 않은 목소리로 설토하 기도 했다 (본인이 아토피가 심해 아기도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설마 우리 아기의 아토피를 보고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우리는 우리 아기를 향한 이런 열띤(?) 반응이 이상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한국의 성인은 하루 평균 몇 명의 아기들과 마주칠까?


아침에 지하철이나 차로 출근을 해 저녁에 같은 방법으로 퇴근을 하고 나면 사실 성인의 일상에서 아기들을 마주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기를 볼 일이 없으니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기"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 미혼 성인에게 "아기"란 굉장히 이질 적인 존재가 아닐까?


둘째, 한국엔 아이들이 넘쳐나 정신이 없었다.

한국에서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려다 보니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약속장소를 찾기가 참 애매했다. 아기가 울어도 폐가 덜 되는 곳, 또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장소나 모유수유실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그 교집합에 놓여있는 장소는 생각보다 적었다. 결국 지인들이 주말에 시간이 되어 토요일 롯데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몇 주 동안 마주칠 수 없었던 한국의 아기와 어린이들 또 그들의 부모들로 그곳은 정신이 없었다. 롯데몰 안은 어딜 가도 아이들과 함께한 부모들로 북적였는데 그곳에 있자니 한국이 저출산 국가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기가 없는 지인들도 그런 그곳의 상황이 놀라웠는지, 지난 몇 년 동안 만난 아이들보다 그날 하루 마주친 아이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놀라 했다. 내가 한국에서 아기들을 많이 본 장소는 몇 군데가 더 있는데 현대 아웃렛과 송도 쇼핑몰이 그곳이다. 이 장소들의 공통점은 수유실이 존재한다는 것과 아이가 울거나 소리를 내어도 다른 장소들에 비해 덜 눈치가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아웃렛과 쇼핑몰은, 특히 부모가 쉬는 주말엔, 아이들로 인산인해이다.



이에 반해 덴마크인들은 매일 아기들과 마주친다.

문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갓난아기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 아빠들과 마주치는데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하철에도, 버스 안에도, 힙한 커피숍에도, 하물며 도서관에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그들의 일상을 이어나간다 (노키즈존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하철 그리고 버스는 유모차나 장애인들이 탑승하기 편하게 넉넉한 자리배정이 충분히 되어있고, 상점들은 유모차 출입하기 용이하게 되어있거나 문화 특성상 유모차를 밖에 놓고 들어가도 되기 때문에, 엄마 아빠들은 매일같이 신생아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고 친구를 만나 밖에서 커피도 마시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도서관처럼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들도 신생아를 포함한 아기들이 놀 수 있게끔 넓은 공간이 배정되어 있고, 한 예로 우리 집 근처 도서관은 영유아 부모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다. 이곳도 아이들이 노는 곳과 성인들이 공부하고 책을 읽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있는데, 시험공부를 하러 도서관을 오는 대학생들도 유모차를 끌고 와 수유를 하는 엄마아빠들과 마주치게 된다. 한국과 차이점 중 하나는 덴마크에선 아빠들이 육아를 전담하는 시간이 (법적으로) 있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에도 아기 기저귀를 가는 스테이션이 당연히 비치되어 있고, 모유수유를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수유실이 없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도 ㅇㅇ가 배고파할 때엔 그곳이 카페 안이건 길가이건 어디에서나 앉아서 직수를 한다. 이렇듯 덴마크에선 아기들, 또는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생활환경 속에 자연스럽게 융합이 되어있고 내가 만약 아기가 없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아기를 마주치는 일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아기란 그렇게 신기한 존재이지 않은 것이다.  



덴마크에서 출산과 육아를 하고 있는 우리 부부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 안에서 아기를 갖은 부모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공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번 한국 방문은 나로 하여금 한국 사회 속 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하였는데, 그것은 한국에서 아기를 동반한 부모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과 비슷한 애로사항을 겪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생각이 드는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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