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바다 건너 유학하고 있는 작은딸 안부를 확인하러 오사카에 갔다. 딸아이는 내가 걱정한 것보다 잘 지내는 듯 보였다. 현지인 같았다. 오사카 난바 시내에서 보니 일본 대학생처럼 보였다. 유창한 일본어와 옷차림과 화장이. 비교적 잘 적응한 듯 보여 마음이 놓였다.
오사카 거리에는 일하는 7080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교통 정리를 하고 깃발을 들고 가게 앞에서 홍보를 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이 묵었던 난바 시내 호텔 식당에도 음식을 만들고, 접시를 나르고, 커피나 음료를 채우는 일을 여유롭고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제각각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교토에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에는 인력거 전용 출입구가 있었다. 그곳으로 일본 2030 남자들이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인력거 끄는 풍경도 이색적이었다. 대근육 활동을 요하는 직업군을 딱 맞춤한 연령대가 일을 하는 것이다. 힘든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신선한 직업의 탄생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금각사 가기 전 점심을 먹었다. 교토는 말차가 유명하다고 해서 우리 가족은 말차비루(맥주)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주문했다. 백반은 오목조목, 아기자기한 도시락에 먹거리가 담겨 나왔다. 남편이 말했다.
“이거 먹고 배가 부를까?”
작은 그릇들 몇 개가 비워지고 나니 배도 부르고 속도 그득했다.
점심을 다 먹은 남편은 또 말했다.
“생각보다 배가 부르다. 조금씩 칸칸이 있는 도시락이 제법이네.”
청수사로 가는 길에 위치한 스타벅스도 교토를 많이 생각나게 하는 것 중 하나다. 100년 된 고옥을 어두운 분위기에 일본 다다미로 리모델링했는데 일본 느낌이 많이 묻어 있었다. 후시 미리 나리 신사를 다 보고 오사카로 돌아오는 길에 붉은 노을과 발갛게 서러운 단풍을 보았다. 교토의 밤은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
일본은 도시락 속 작은 음식처럼 간소하고 단출하다. 키 작은 단풍은 충분히 가을 같고 넉넉한 색과 기품을 품고 있었다. 일본 가정식 백반처럼 우리 가족도 본인이 자리한 곳에서 열심히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취업 2년 차 큰아이도,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는 작은아이도, 그리고 남편도. 물론 나도 그렇다. 일본 오사카 난바와 교토에서 본 며칠은 노인과 이삼십 대가 함께 어울려 일하고, 도시락 속에 맛있는 메뉴 하나하나가 잘 자리하고 있는 것이 조화롭게 생각되었다. 우리 가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