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직한 주제를 2025년 끝자락에 떠나보낸다).
서러움으로 뭉쳐진 눈물이 자꾸만 흐른다. 퇴사라는 것이 내 나이쯤 되면 누구나 몇 번 겪을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 나는 나이에 대한 무게감도 없이 자꾸 슬픈 생각이 들까? 사직서를 쓸 때까지는 몰랐던 못생긴 마음이었다. 분하고 손해 본 것 같은 감정은 계속해서 나를 힘들게 했다. 앞뒤 소리 듣지도 않고 나에게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사람에게 그냥 울기만 한 것이 또 제대로 말 한마디 못 한 것도 분하다.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눈을 희번덕거렸던 그 사람의 눈을 무서워했던 것도 내내 속상했다. 이 마음 그대로 피해감을 글로 써서 어떤 인터넷 사이트라도 올려볼까? 문과생의 고급 공격처럼 유려한 문장으로 말이다. 내 마음이 꽤 일방적인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을 자다 깨서 생각하고, 설거지하다가 생각하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 경험들이 쌓여서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은 지나간 어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생각해 주는 것도, 서사를 붙여 주는 것 같아 2차 가해로 폭력 되었다. 그만 종료하고 싶다.
나는 옆 사람이 말리기도 했는데 어렵게 입사한 곳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나는 사직을 당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업무와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 도망자가 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A가 나에게 가한 이런저런 짓거리들이 그저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A는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왜 본인은 해도 되는 것처럼 했을까도 생각해 본다. 본인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오만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말하는 여유와 습관을 미처 못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사직서 제출 이후에 든 생각이다. 그전에 A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면 퇴사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그것도 지금 마무리 지을 생각 뭉치는 아니다. 어느 날 여러 대인관계 경험 속에서 발견하고 싶다. 그때 A의 폭력에 대해서. 며칠 생각 정리 끝에 나는 한 가지를 결정했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참는 법을 배우기보다 참을 일과 못 참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또 즐겁고 건강하게 화내는 방법도 같이 고민해 볼 참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30년 근무했다. 계약 종료로 퇴사 처리가 되고, 또 신규 계약을 하고, 다시 다니고 하는 방법으로 30년 근속했다. 일하면서 억울함도 있었고, 분한 일도 있었지만, 우리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꼬박꼬박 자동이체로 빠지는 돈도 많아서 봉급 받는 재미를 꼬투리 삼아 일은 꼭 하여야 했다. 그렇게 근속한 회사에 막상 내가 먼저 사직서를 용감하게 내고 만 것이다. 걱정을 뒤로하고. 당장 수입이 없으니,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작은아이를 어떻게 뒷바라지를 해줄까 싶어 덜컥 겁이 난다. 회사라는 조직은 냉정하기도 하고 건조하기도 해서 내 개인 사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때때로 마음속 이런저런 나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념이 많았다. 남은 휴가를 소진하고 퇴직금을 받고 정말 백수가 되었다. 세 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는 회사와 집만 쳇바퀴 돌았더니 주위에는 같이 놀 친구 한 명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없어 혼자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집안일은 좀처럼 손에 익지 않아 부엌살림은 낯설기만 했다. 회사 근처에라도 가볼까? 직원들과 함께 갔던 식당 근처를 서성이다 우연히 만난 듯 점심 식사를 같이하고 올까?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시간은 계속 어제 그 시간이다. 한참 텔레비전을 봤는데도 점심때는 아직이다. 하루 중 어느 시간의 지루함을 당최 견디기 힘들다. 그러던 중에 문득 “ 내가 지금 그만둔 회사를 왔다 갔다 할 때가 아니지. 지금의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한 발짝 나가는 길을 터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한 서운함이 채비하는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다. 채비 길을 막아선 것은 또 있었다. 심드렁한 나의 마음이다. 무기력한 발걸음은 좀처럼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 나설 채비를 해야 하는데.
나이 쉰 살에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불안과 의기소침으로 꽉 차 있다. 여기저기 회사에 같은 일 경험으로 서류를 넣었다. 서류부터 떨어진 곳도 있었고, 면접 전형까지 간 곳도 있었다. 그 뒤로도 두 곳으로부터 채용 불가 문자를 받았다. 자꾸만 위축되는 내 마음을 보면서, 또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나를 발견하면서 재취업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도 채비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고, 그만 상처받고 싶기도 했다. 양가감정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대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였다. 회사 규모와 연봉이 높아서 주눅이 들었지만, 큰 용기를 내었다. 다행히 1차는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가림 채용인 것이 나이와 학력에 대한 선입견 없이 일 경험이 회사 사정과 맞으면 합격인 줄 알고 있었지만 계속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나는 1차 합격에도 엄청 기뻤다. 면접은 어떤 자세로 볼까, 하고 며칠 밤을 고민했다. 면접 질문 중에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라고 면접관이 물었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 본 면접관에게 맨 처음 공장 생활을 할 때의 첫 마음을 고백했다. 옆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을 나눠주는 든든한 동료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면접관은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며 흐뭇해했다. 면접은 생각보다 길어져 30분도 넘게 진행되었다. 면접을 보고 속이 후련했다.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불합격해도 감당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에 문자가 한 통 왔다. 합격 문자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남편 보고 읽어달라고 했다. 남편은 잘 들어 보라면서 “귀하는 이번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알려드리오니.”로 시작하는 안내 문구를 읽어주었다. 나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생각나 한참 울었다. 너무 울었나 싶어 조금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요 몇 달 입사와 퇴사, 그리고 새로운 입사에 대해 질서를 지어 주고 싶다. 짧았지만 강력했고, 고약했지만 달콤했던 순간순간이 모두 나에게 아끼는 이력이 되었다. 나는 며칠 후면 최종 합격한 회사로 설렘을 가지고 출근한다. 며칠 전 받았던 거짓말 같은 <합격> 문자는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사직서가 쓰고 싶어질 때 한 번씩 나를 붙들어 줄 것이다.
이제 채비는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