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귀여운 핑크빛 귀가 하얗다 못해 노랗게 되고 몸이 차게 식어 굳어갈 때쯤에서야 평소 어색해서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열무는 멍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훌쩍이며 누웠다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다 열무와 마주 보고 누워 잠깐 잤다. 고맙게도 가족들이 장례업체에 연락해서 준비를 했다. 열무를 보살펴주신 병원 원장님께 먼저 연락드렸는데 그분이 우리보다 먼저 장례업체에 연락해주셨다.
열무 간식, 옷, 새벽에 먹다 남은 바나나 반 쪽과 삶은 달걀 한 개, 엄마가 열무 전용으로 만든 비누 등을 챙겼다. 열무가 계란을 '먹어주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죽기 직전에도 엄마가 먹여주는 물을 삼킨 것도 주는 사람을 위해 힘겹게 삼킨 게 아닌가 싶다. 배려심 넘치는 열무는 가족들이 다 모여있을 때 공휴일에 갔다.
열무가 떠나기 2주 전 안 오던 비가 내렸다. 픽업차를 타고 장례식장에 갔다. 가족들 배려로 내가 열무를 안고 갔다. 아기같이 안겨있는 열무 한쪽 눈알이 찌그러져 있었다. 한쪽으로 누워 6시간 이상 있어서 그런 듯했다. 우리 열무가 쪼그라들어 주름진 눈에 흠집이 있어도 아파하지 않는 걸 보니 그제야 약간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멀미가 났다. 평소 멀미가 있어 차에 탑승하면 바로 자려고 한다. 하지만 이 순간은 열무를 안고 있는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중간중간 열무를 쓰다듬으면서 버텼다.
식장 들어서자마자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과 멀미때문에 비틀대며 돌아다니다 소파에 앉았다가 열무 쓰다듬었다가 정신없었다.
계속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이라더니 십여 년을 함께한 흔적이 사진 몇 백장이 전부란 것에 놀라웠다. 영정사진을 선택하면서 왜 이렇게 잘 나온 사진이 없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열무를 화장할 때도 엄마와 언니는 엉엉 울었다. 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열무가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던 아빠는 얼이 빠져 있었다. 화장한 열무는 매우 작았다. 다른 것보다 그 예쁘고 동그란 두상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열무의 형태가 달라졌고 대부분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을 텐데 비가 와서 더 훨훨 날아가지 못할까 우려스러웠다. 분골 한 가루는 유골함에 담아 집에 가져왔다. 열무가 살아있던 지 12시간도 안되어 작은 함에 담길 만큼 소량의 가루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밥을 먹기가 미안했다. 식탐 많던 그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 몇 년 동안 그렇게도 빠지지 않던 체중이 빠르게 줄어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도 배는 고팠지만 먹고 싶지는 않았다. 열무가 보고 싶었다. 이제 바나나와 달걀을 보면 열무가 생각날 것이다. 먹이지 못한 사과도 생각날 것이다. 열무가 밥을 잘 먹지 않았던 일주일 정도는 아마 잘 먹지 않을 것 같다. 열무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