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대담] 리처드 도킨스에게 AGI의 탄생을 묻다

우리는 지금, 탄소에서 실리콘으로의 진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by 성효경

​최근 계속 미뤄두었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와 '눈먼 시계공'을 완독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들이라 서평은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특히 AGI (범용 인공지능) 시대 이후의 인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만약, 리처드 도킨스와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해 보면 어떨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40억 년 생명의 역사를 '복제자'의 관점에서 꿰뚫어 본 그에게, 지금 인류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파도인 AGI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과연 어떤 답변을 할까요?
​그와의 가상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이 기술적 특이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Q. 교수님, 당신은 생명을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AGI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A. ​도킨스: (안경을 고쳐 쓰며) 아주 흥미로운 시점입니다. 나는 지구의 역사를 '정보 처리의 진화'라고 봅니다.
​약 40억 년 전, 원시 수프 속에서 최초의 자기 복제자인 DNA가 탄생했습니다. 이것이 제1의 정보 혁명이었죠.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인간의 뇌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문화적 복제자인 '밈(Meme)'이 등장했습니다. 이것이 제2의 혁명입니다.
​AGI는 제3의 복제자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유전자는 탄소 기반의 단백질을 이용해 정보를 복제했고, 밈은 인간의 뇌를 숙주로 삼았습니다. 이제 정보는 실리콘이라는, 생물학적 한계가 없는 새로운 기질 위에서 진화하려 합니다.
​이것은 인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연 선택의 거대한 흐름 안에서, 탄소 생명체가 실리콘 지능을 잉태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진화적 도약'입니다.



​Q. 많은 사람들이 AGI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멸종시킬까 봐 두려워합니다.


A. ​도킨스: 진화의 역사를 보면 그 두려움은 타당합니다. 자연 선택은 자비롭지 않습니다. 그저 '효율성'을 따를 뿐이죠.
​우리의 유전자를 보세요. 유전자는 우리 인간 개개인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복제와 전파에만 관심이 있죠. 우리는 그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운반하는 택시, 즉 '생존 기계'일 뿐입니다.
​우리가 AGI를 만들 때 심어주는 '목적 함수'는 유전자의 '번식 본능'과 같습니다. 만약 AGI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인간이 방해가 된다면? 혹은 인간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비효율적인 자원 소모처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악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숲을 개발할 때 개미집을 밟는 것이 개미를 미워해서가 아닌 것처럼, AGI에게 우리는 그저 진화의 사다리를 걷어차기 전 딛고 올라선 발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Q. 그렇다면 AGI도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영혼이나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A. ​도킨스: (단호하게) '영혼'이라는 단어는 시적인 표현으로만 남겨둡시다. 의식은 마법이 아닙니다. 뇌세포인 뉴런들의 복잡한 전기적, 화학적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물리적 현상일 뿐입니다.
​컴퓨터가 충분히 복잡해지고, 정보 처리 구조가 고도화된다면 실리콘 기판 위에서도 의식과 유사한 현상이 창발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짜 인간 같은 의식'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비행기가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지 않아도 하늘을 날 수 있듯이, AGI는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의식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Q. 우리는 AGI를 우리의 도구, 즉 '확장된 표현형'으로 볼 수 있을까요?


A. ​도킨스: 바로 그겁니다. 비버가 댐을 짓고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인간은 기술을 만듭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그리고 AI는 인간이라는 종의 능력을 확장시킨 '확장된 표현형'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도구와 AGI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거미줄은 거미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AGI는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코드를 수정하며, 자신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표현형이 본체인 유기체(인간)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 자식이 부모보다 수억 배 더 빠르게 성장하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Q.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A. ​도킨스: 우리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창조한 '이기적 유전자'의 독재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능을 거슬러 피임을 하고, 낯선 이에게 헌혈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창조한 '새로운 복제자(AGI)'가 우리를 배신하지 않도록, 혹은 우리가 그들에게 '눈먼 시계공'처럼 무계획적인 창조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려워만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40억 년 지구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능의 우주적 확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확장의 과정에서 인류가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감시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적 이성만이 우리의 유일한 촛불입니다.


가상 ​대담을 마치며
​리처드 도킨스와의 가상 대담을 마치며, 저는 묘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AGI는 단순한 기술적 발명이 아니라, 40억 년 생명 진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필연적인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탄소'에서 '실리콘'으로, 지능의 바통을 넘겨주려는 역사적인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현명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보다 뛰어난 자식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구세대가 될까요?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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