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노동 이후 -도스토옙스키에서 인공지능까지
도스토옙스키의 시베리아 유형 체험을 바탕으로 한 중편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화자는 인간을 가장 깊이 무너뜨리는 것은 채찍이나 굶주림이 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을 반복해서 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일이 아무 결과도 낳지 않고,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그것이 쓸모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인간은 단순히 고통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존재가 된다. 인간은 고통은 견딜 수 있지만 스스로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함을 느꼈을 때 내면으로부터 무너진다.
이 관찰은 특정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배경만 바뀌었을 뿐 구조는 그대로다. 오늘날 우리는 채찍 대신 알고리즘을, 강제 노동 대신 자동화를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고, 쓰고, 분류하고, 판단한다. 인간은 점점 생산의 중심에서 비켜서게 된다. 그래서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 기본소득 같은 제도가 대안처럼 이야기된다. 생존의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곧바로 삶을 채워 주지는 않는다.
감옥에서 죄수들은 비누를 만들고, 신발을 꿰매고, 누군가 사용할 물건을 만든다. 그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일이 누군가에게 쓰일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견딜 수 있는 일이 된다.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 에서도 언급했던 것 처럼, 만약 죄수들에게 오늘은 운동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흙을 반대편으로 옮기게 하고, 다음 날에는 그 흙을 다시 원래 자리로 옮기게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일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 죄수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만약 내가 예전과 똑같은 일을 계속 하고 있고, 받는 보상도 그대로이지만, 그 일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전제해 보자. 처음에는 오히려 이 변화가 합리적이라 생각될 것이다. 하는 일도 같고, 받는 보상도 같으며, 평가받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뒤처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내가 빠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없어도 세계가 더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의 문제는 실업이 아니라 불필요함이다. 소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결핍 때문에만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아무것에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무너진다. 도스토옙스키가 본 지옥은 굶주린 사람들의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오늘날에도 반복될 수 있다.
많은 역할은 이미 기술적으로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다. 계산도, 해석도, 분류도, 서술도 가능하다. 심지어 책임의 귀속 구조조차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문제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휴대폰 속 AI 판독 앱은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라고 알려 준다. 이 두 말이 다를 때, 사람들은 의사보다 오히려 AI의 판단을 더 신뢰할 것이다.
이쯤에서 흔히 이런 반론이 나온다. 최종 결정은 인간이 해야 하고, 그 책임도 인간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그렇게 책임을 지며 살아왔는가.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이 뒤집히는 일은 드물고, 의사들의 의료 사고는 대부분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전문가의 판단은 오랫동안 권위로 보호되어 왔고, 그 권위는 종종 책임이 아니라 면책으로 기능해 왔다.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지에서 인간이 무엇으로 무너지는지를 보았고, 우리는 AI 시대에 인간이 무엇으로 무너질지를 다시 보고 있다. 둘은 다르지 않다. 인간은 고통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가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순간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직업이 대체되고, 자신의 일에 대해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보상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의 정신 세계는 내면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고, 이것을 다시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