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들의 협력 연대기 [Part 1]

[Part 1] 이기적 유전자: 냉혹한 생존 기계의 탄생 (1976)

by 성효경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가 종도 개체도 아닌, '자기 복제자'인 유전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그는 생명체를 유전자가 소멸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기계'로 정의한다.

이 파격적인 주장은 유전자가 개체와 달리 복제자로서 갖는 고유한 속성에 기인한다. 도킨스에 따르면 훌륭한 복제자는 '장수,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개체는 유성생식을 거치며 유전자가 뒤섞여 단 한 세대 만에 사라지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지만, 유전자는 수백만 년 동안 그 정보를 유지하며 복제될 수 있다. 결국 진화의 거름망을 통과해 끝까지 살아남는 실체는 찰나의 개체가 아니라 그 안의 유전자 정보라는 것이다.

당시 학계에는 "생물은 종의 보존을 위해 행동한다"는 집단선택설이 만연했다. 도킨스는 이를 '내부로부터의 반역'이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만약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개체들 사이에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개체가 단 하나라도 침입한다면, 그는 희생하는 이들보다 더 잘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것이다. 결국 세대가 지날수록 집단 전체는 이기적 개체로 가득 차게 되므로, '종의 이익'을 위한 희생은 논리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사례 1: 벌목 곤충의 '3/4 근연도' 역설

도킨스는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고 여왕을 돕는 일개미의 행동이 지독한 유전적 계산의 결과임을 증명했다. 이는 벌목 곤충 특유의 '반배수성' 체계 때문이다.

암컷은 수정란에서 태어나는 2배체(2n)인 반면, 수컷은 미수정란에서 태어나는 반배수체(n)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정자를 만들 때 감수분열 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100% 똑같이 물려준다. 결과적으로 자매들은 아버지로부터 동일한 유전자를 100% 물려받고, 어머니로부터는 50%의 확률로 유전자를 공유한다.

이를 합산하면 자매간의 근연도는 3/4(75%)에 달한다. 반면 일개미가 직접 자식을 낳을 경우의 근연도는 1/2(50%)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직접 번식보다 대리 양육이 훨씬 '수익률 높은 사업'인 셈이다. 일개미의 헌신은 숭고한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남기려는 유전자의 철저한 이기적 전략이다.


사례 2: 탁란과 신경계의 조종 (뻐꾸기)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탁란은 한 종의 유전자가 다른 종의 '생존 기계'를 원격 조종하듯 가로채는 진화의 극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도킨스는 이를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타자의 행동을 제어하는 '조작'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뻐꾸기 새끼는 부화하자마자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숙주(개개비 등)의 알이나 새끼를 등 위로 밀어올려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숙주의 유전적 복사본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진짜 놀라운 지점은 숙주(양부모)의 반응이다. 숙주는 자신의 친자식이 몰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뻐꾸기 새끼에게 헌신적으로 먹이를 나른다. 뻐꾸기의 유전자는 숙주의 뇌에 각인된 본능적 프로그램을 해킹하기 위해 '초정상 자극'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뻐꾸기 새끼가 입을 크게 벌릴 때 드러나는 강렬한 붉은색 입안과 특유의 울음소리는 숙주의 신경계에 "먹이를 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강력한 명령으로 작용한다.

확장된 영향력: 도킨스는 이를 유전자가 자신의 몸 밖까지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뻐꾸기의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 기계(뻐꾸기 몸)를 넘어 숙주의 생존 기계(숙주의 몸)까지 자신의 복제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다. 숙주는 자신의 유전적 이익을 철저히 배반한 채, 타자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도구화된 생존 기계'가 된다.


이기적 유전자 초판본의 한계

혈연을 넘어서는 협력의 공백도킨스는 '친족 선택'과 '조작'의 논리를 통해 생태계의 복잡한 이타성과 기만을 정교하게 해부했다. 하지만 이 이론적 승리는 역설적으로 더 거대한 질문을 남겼다. "유전적 근연도가 0인 타인, 즉 유전자를 전혀 공유하지 않는 개체들이 어떻게 서로를 돕는가?"라는 지점이다. 1976년의 도킨스가 이 지점에서 마주한 한계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배신자'를 이길 수학적 모델의 부재다. 해밀턴의 규칙에서 근연도가 0이 되면, 어떤 호의적 행동도 유전자의 이익 관점에서는 마이너스가 된다. 당시 게임이론의 기초는 있었으나, 이기적인 존재들로 가득 찬 집단에서 우연히 발생한 '협력자'가 '배신자'들의 착취를 견디고 어떻게 번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수학적 확신이 부족했다. 무조건 돕는 '호구' 전략은 배신자들에게 금방 먹혀버리고, 결국 집단에는 이기적인 유전자만 남게 된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둘째, 협력을 '본능의 오작동'으로 치부한 점이다. 도킨스는 초판에서 낯선 이에게 베푸는 호의를 과거 소규모 부족 사회(모두가 친척이었던 시절)의 본능이 현대의 거대 사회에서 잘못 발현된 '잔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우리가 타인을 돕는 것은 유전자가 시킨 영리한 전략이 아니라, 유전자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저지른 '실수'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고귀한 사회성을 진화적 오류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의 미완성이다. 존 메이너드 스미스의 ESS 개념은 있었지만, 이것이 반복되는 인간 관계와 사회 시스템 전반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개체를 만든다"는 명제를 혈연 내에서는 완벽히 증명했지만, 혈연 밖에서는 이기적 유전자가 왜 협력의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결정적 한 방'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1976년의 독자들은 "우리는 단지 이기적인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차가운 기계일 뿐인가?"라는 냉소주의에 부딪혀야 했다. 이기적 존재들이 모여 어떻게 '사회'라는 기적을 일궈냈으며, 왜 '착함'이 '영리함'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1984년 로버트 액슬로드의 게임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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