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가 가고 봄동비빔밥이 왔다
인스타 피드를 넘기다 멈칫했다. 지난주까지 두쫀쿠 인증샷으로 가득하던 화면이 온통 봄동 비빔밥이다. 초록 잎사귀 위에 고추장, 참기름 한 바퀴. 누가 신호를 보낸 것도 아닌데, 다들 일제히 봄을 비비고 있다. 이제 또 유행이 바뀐거구나.
우리에겐 사계절 말고도 또 하나의 계절이 있다. SNS 피드 위를 흐르는 음식의 계절. 그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누군가의 릴스 한 편으로 불쑥 시작되어 줄 서는 사진이 릴레이처럼 이어지다가,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끝난다.
2011년, 꼬꼬면의 여름이 있었다. 하얀 국물이라는 말 자체가 신선했다. 빨간 라면만 알던 입에 닭육수의 뽀얀 거품이 닿았을 때의 그 낯선 부드러움. 편의점마다 품절이었고, 사람들은 박스 단위로 사재기했다. 마치 이 맛이 영원할 것처럼. 그런데 꼬꼬면은 지금도 팔린다. 다만 아무도 줄을 서지 않을 뿐이다. 맛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허니버터칩의 가을은 더 뜨거웠다. 2014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그 노란 봉지는 일종의 화폐였다. 구하면 자랑이고, 나눠주면 은혜였다. 감자칩 하나에 중고거래 가격이 붙던 시절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게 지금은 좀 비현실적이다. 달콤하고 짭짤한 그 맛은 분명 맛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맛 자체보다 "구했다"는 사실이 더 맛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만 카스테라가 왔고, 마카롱이 왔고, 크로플이 왔다. 편의점에선 포켓몬빵의 시대가 열렸다. 빵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띠부씰을 모아야 해서 편의점을 세 군데씩 돌던 어른들. 빵은 서랍에 쌓이고, 스티커만 소중하게 앨범에 꽂혔다. 먹는 게 아니라 모으는 게 목적인 먹거리라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그때는 다들 진지했다.
그리고 마라탕의 시대가 왔다. 얼얼한 화자오 향이 대학가를 점령하더니, 탕후루까지 동시에 터졌다. 마라탕으로 얼얼해진 입안을 설탕 코팅된 과일로 달래는 조합, "마라탕후루"라는 말이 그렇게 생겨났다. 매운 것 다음에 단 것, 자극 다음에 자극. 대학가 골목에 마라탕 가게와 탕후루 가게가 나란히 서너 집씩 들어서던 날들이 있었다. 이 거리가 반년 뒤에도 이럴까, 잠깐 생각한 적이 있다. 반년이 채 안 되어 그 자리엔 다른 간판이 걸렸다.
유행하는 음식 앞에서 우리는 묘한 조급함을 느낀다. 지금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 맛이 곧 사라질 것 같은 감각. 실제로 사라지기도 하니까 그 조급함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라지는 건 맛이 아니라 '맛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가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감상을 나누고, 같은 해시태그를 다는 그 짧고 뜨거운 합의. 그것이 끝나는 거다.
생각해 보면 유행 음식은 미각의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사건에 가깝다. 새로운 맛을 발견하면 우리는 "너도 먹어봤어?"라고 물었고, 품절템을 구하면 "이거 구하느라 세 군데 돌았어"라고 자랑했다. 인증샷에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유행 음식의 진짜 맛은 혀가 아니라 그 음식을 사이에 둔 대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행이 지난 뒤에도 그 맛을 떠올리면, 음식 자체보다 그때의 공기가 먼저 온다. 뽀얀 김이 올라오던 자취방의 좁은 식탁. 과자 봉지를 뜯으며 까르르 웃던 사무실 오후. 설탕이 이 사이에서 까드득 부서지던 가을 저녁의 산책로. 음식은 잊어도 그 장면은 남는다.
봄동 비빔밥이 SNS를 장식하고 있다. 초록빛 잎사귀 위에 고추장 한 숟갈, 참기름 한 바퀴. 피드를 넘기면 너도나도 봄을 비비고 있다.
그런데 이번 유행은 좀 다르다. 단짠단짠, 맵단맵단. 그동안 피드를 점령한 것들은 자극의 조합이었다. 설탕을 입히고, 화자오를 넣고, 더 달게, 더 맵게. 감각의 볼륨을 끝없이 올리는 방향으로만 달려왔는데, 갑자기 봄동이다. 제철 채소에 밥 한 공기, 고추장 한 숟갈. 그게 전부다. 흑백요리사에서 선재 스님이 내놓은 비빔밥이 떠오른다.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비빔밥이었는데, 화면 너머로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특별한 재료도, 화려한 기교도 없이, 그냥 제 맛이 좋은 것들을 정성껏 비벼낸 한 그릇. 자극에 지친 혀가 결국 돌아가는 곳은 그런 맛인 걸까.
어쩌면 유행에도 계절이 순환하듯, 입맛에도 돌아오는 자리가 있는 건지 모른다. 자극을 한껏 높인 끝에, 조용히 제자리를 찾는 감각. 봄동 비빔밥이 피드를 채우는 건 단순히 다음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잔뜩 달리고 난 뒤 깊은 숨 한번 내쉬는 것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이것도 언젠가는 다음 무언가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 따라 비빈다. 지금 이 계절의 맛이, 지금 이 계절의 대화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