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친구가 생겼다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by 큐인


인생은 마치 미로 같았고, 나는 꼭 방향 감각을 잃은 것 같았다.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금세 길이 막혔다. 그런 나에게 이곳은.




방황하는 내 손을 잡아준 친구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할 줄 몰랐다. 흥미를 느껴도 어느새 다른 것에 새로운 흥미를 느껴버리고, 금방 질려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의 성격은 소심했고, 조용하면서 산만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결같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었다. 어쩜 나는 이리도 어중간할까. 잘하는 것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늘 방황하고 부족함을 느끼며.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는 것은 고사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을 찾은 것 같으면 노력하다 한계에 부딪히고, 인간관계는 그저 어렵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모 아니면 도인 삶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어느 것에 두터운 재능이 있거나, 눈 씻고 봐도 재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 있거나 하는 삶 말이다.


나는 정말 어중간했다.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며 배우게 된 미술도, 그 시절 많이들 배우던 피아노의 흐름에 탑승했을 때도, 홈쇼핑에서 볼 때는 너무도 멋있어 보였던 통기타를 엄마에게 졸라서 샀을 때도. 재능은 없지만 많이 노력했던 공부도. 전부 아니었다. 미술은 상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어릴 때뿐이었다. 피아노는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아서 포기했고, 통기타는 줄을 몇 번 튕기다 흥미가 떨어져 손을 놨다. 공부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재미도, 그럴 열정도 애당초 없었다. 뭘 시작하고, 뭘 배우든 오래가지 못했다. 당연했다. 진심이었던 다른 사람들보다 진심이지 않았으니까.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금방 질려했으니까.


차라리 재능이 있었다면 재미있게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아예 재능이 없었다면, 놓을 수 있었을까. 미술은 잊을 만하면 주변 선생님께서 칭찬하셨고, 공부는 학생 신분에 소심했던 나에게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중간에는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내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곳의 학생들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웠고, 여유로웠으며 마음이 풍족해 보였다. 부러움 담긴 시선으로 바라본 외국의 환경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를 향한 억압과 불안함 속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영어가 어려웠던 나에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술이었다. 그렇게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 예술 쪽의 분야는 다 손을 대 봤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고 붓칠하는 페인팅부터 그래픽 디자인,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인까지도.


분명히 재미를 느꼈다. 흥미로웠고,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거기까지였다. 실력이 출중한 다른 학생들과 매번 비교당하고, 비교하였고, 부러워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열을 할 때 하나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고, 자책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또다시 어중간한 나로 돌아가던 때였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 전형을 통해 등 떠밀려 간 경영학과, 역시나 맞지 않았다. 휴학을 선택하고 배웠던 애견 미용도. 결국 이 길도 아닌 것을 깨닫고 그만두게 되었다. 방황하고, 또 방황할 때 내가 정신을 다잡을 수 있던 이유는 그 스트레스 속에서도 내가 다음을 기다리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었다. 많은 작가님들의 글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버팀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주고 싶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이 길마저 오답이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내 손을 잡아준 친구가 있으니 괜찮다. 브런치 스토리라는 플랫폼은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고, 때문에 작가 승인을 받은 것도 2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간마저 브런치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브런치의 곁에서 나의 일상을 펼치고, 상상을 펼치고, 그렇게 작문을 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