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첫 번째 대상 ㅡ남편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시를 읽어보셨나요?.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제목을 읽는 순간
더 나은 내가 되는 법 "앗 이거다."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맀을 때부터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질투'가 갖는 부정의 의미보다 나의 힘'이 갖는 긍정에 더 방점을 뒀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하듯이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긍정의 힘이 될 수 있는 '질투의 덕목'을 찾아봅니다.
나의 첫 질투의 대상은 남편입니다.
내가 남편을 첫 번째로 쓴 이유는 가장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하며 내게 선한 영향력을 보내준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삶에서 받은 양분 첫 번째
너의 이름은?!으로 찾아준 정체성
결혼 후 남들 부부가 부르는 여보 ~ 당신~자기야~이런 호칭을 남편에게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 남편은 대뜸 저의 이름을 부르며 덧붙여하는 말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을 읊었습니다.~너의 이름을 찾아라고 말입니다.
결혼 25년 차 지금도 남편은 변함없이 이름을 부릅니다. 여보 대신 이름을 불러 주는 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듯 기분이 좋을 것 같다가도 왠지 "여보~"로 불러 보고 싶지만 저도 낯간지럽긴 할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제 이름 뜻을 풀어보면
연못가에 핀 한송이 난꽃처럼 우아한 삶을 살아라입니다. 친정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남편 덕분에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자주 부르며 살고 있긴 하죠.
예전의 나는 싫고 좋은 게 불분명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이름으로 찾아간 나의 정체성은 삶에 대한 태도까지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시나브로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지만 책을 읽으며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도 더욱 또렷해지고 있는 내 이름을 잊지 않게 불러준 남편 덕입니다.
좋은 걸 배웠으니 저도 실천을 해 보았습니다.
각종 모임에 나가면 지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처음엔 불려지는 게 어색한 듯 낯설게 느껴지던 이름들이 차츰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렇게 언니 동생으로 만나게 되더라고요.
남편 따라 김춘수의 시도 읊어주며 , 누구 엄마로 불렸던 맘들에게 이름부르기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준 듯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남다른 사고를 가진 남편의 영향이 컸죠.
장모님도, 처형의 이름도 편하게 불러대는 남편은
왠지 이해는 안 되지만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사랑의 감정도 생기는 걸까요?^^
너의 이름을 찾아라
남편이 준 두 번째 양분은
35년 전 전주 시골서 상경한 남편은 신혼인 넷째 형네 집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신혼생활의 걸림돌 같은 시동생과 함께 8년을 같이 산 것이죠.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이 어려웠기에 첫째 둘째 셋째 형수님들께도 크고 작은 신세를 졌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가 신세 지는데 모든 핑계가 됐던 우리 남편.
결혼 초 형님네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이에요. '마트 좀 들러서 가자"라고 하면 "우리 형네집 가는데 그냥 가도 된다. 가족이니 괜찮다 "하고, 매 번 밥 사주시는 넷째 아주버님은 "잘 사니 얻어먹는 건 괜찮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나중에 잘살면 사드리면 되지!! "하며 당당히 가는 것입니다.
다섯째 중 막내인 나는 상당히 어렵고 불편해서 투덜거렸죠.
그랬던 남편이 지금은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50이 넘더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그래야 인간이라고 합니다.
형님네 갈 땐 형수님 고기 좋아한다고 먹다가 쓰러져도 좋을 만큼 넉넉히 사들고 갑니다. 싱싱한 재료 사서 같이 요리까지 하고 한상 차림이 준비되면 조카들까지 불러 모여 술 한잔 기울이기도 합니다. 가족이야기가 팝콘 터지듯, 한 가득인 따뜻한 시간을 만들었답니다. 다 큰 조카들은 아직도 남편을 좋아합니다. 형님네서 신세 졌던 시절 형수님 몰래 어린 조카들을 라면으로 홀렸던 이야기는 자주 듣는 레퍼토리입니다. 불편했던 시간을 참아내 준 감사함을 전하고, 서로 웃으며 가족의 정이 투터워지는 마음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지인. 친구. 가족들을 기억하며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고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하나씩 보답하며 사는 남편이 투박해도 인간미 있어서 저는 좋습니다.
작년에는 통 크게 한 번 쐈습니다.
60 환갑 맞은 두 형님 모시고, 네 명의 며느리 그리스
여행을 보내준 거예요.형님들이 너무 행복해 하셔서 저도 기뻤습니다.
은혜 갚은 까치'가 된 남편 덕분에 우리 며느리들 잊지 못할 추억도 생겼죠.
나도 남편의 두 번째 가르침인 감사함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나는 고등학교시절부터 큰 오빠네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큰올케가 육아와 일로 지치고 힘들어해도 친구 만나러 나가 버렸던 철없던 시절. 나를 껴안고 받아주었던 올케에게 나이 들어서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큰 올케에게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시누가 있어 되려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죠.
감사함을 전하는 것은 오해를 화해로 바꾸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자신을 위해 쓸 수도 있지만
남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기억했죠. 저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저에게 베풀어 주었던 온정을 기억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마음은 그동안의 아픔이나 기억을 이해함으로 화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야기ㅡ첫 번째 남편 1부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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