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초등학생 아들의 ADHD 기록
“넌 도대체 왜 그러니? “
“네가 짜증 내는 이유가 뭔데?”
“이제 좀 그만할 때 되지 않았어?”
“오늘 또 잃어버린 거야?”
“에휴, 네가 그럼 그렇지”
ADHD 진단 전 내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는지 몰랐다.
그냥 나의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한 거 아닐까?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기에,
더 따뜻하게 대해주고 안아줬어야 하는 어린 마음에
칼 날 같이 날카로운 말들로 나는 늘 상처를 주었다.
워킹맘으로 늘 바쁘게 시간을 쪼개며 살았던 내가
각성하게 된 건 아이가 2학년 겨울방학 때 즈음이다. 방학기간이라 학교를 안 가서 학원으로만 하루를 다 보내고 스케줄에 떠밀려 전전긍긍하던 그때에.
아침에 일어나면 나와 남편은 출근하고 없으니
오롯이 아이 스스로 모든 걸 했어야 했다.
밥도 챙겨 먹고,
옷도 입고, 학원 가방도 챙기고,
학원 차량에 시간 맞춰서 나가야 하고.
혼자도 아닌 동생과 늘 함께했다.
그래서 당연히 괜찮은지 알았다.
아니 괜찮을 줄 알았다.
한 달 정도 이 생활을 반복하니 결국 터질게 터졌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저 나를 보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러다 울다 지쳐 잠들고, 먹기는커녕 입에 떠다 넣어줘서 삼키지 않았다.
ADHD 아이에게 모든 걸 맡기고
스스로 결정해서 해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아이에게는 지옥이었다.
방학기간 내내
늘 불안과 긴장으로 하루를 보냈을 아이.
아이는 나에게 자신의 버거움과 마음의 응어리를
우울증이라는 행동으로 표현했고, 가정과 직장에서 평행을 이루지 못했던 나는 결국 나는 아이에게 백기를 들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그냥 지내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내가 없을 때 뛰어내리면 어떻게 하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를 이렇게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워킹맘이었지만, 아이 본인도 사회에서 만큼은 열심히 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늘 모범생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 그래서 방학기간에 보여준 아이의 행동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결국 회사에 아껴두었던 나의 육아휴직을 승인받아
25년 4월부터 1년간 육아휴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를 쉰다고 이야기하자, 거짓말처럼 아이가 괜찮아졌다.
“아들아, 엄마 이제 회사 안 나갈 거야?”
“진짜지? 언제부터? 거짓말 아니지?”
“응, 진짜야. 이제 학교도 데려다주고 끝나고 문 앞에서 기다릴게. 학교 끝나고 오면 집에서 간식도 챙겨주고 학원도 데려다줄 수 있어.”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우리 아이에게는 마음의 안정이 찾아올 만큼 큰 일이었나 보다.
학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집에 엄마가 있는 것.
별거 아닌데, 진짜 별거 아닌데
왜 그동안 나는 웃으면서 못해줬을까.
시간에 쫓겨 다그치고 짜증 섞인 말투로
아이를 대했던 지난날의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저 나는 내가 열심히 살면 괜찮을 줄 알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얘기해 왔다.
’ 부모가 바르게 성실하게 살면 아이도 당연히 올곧게 자랄 거예요.’
결국 지금은 깨달았다.
나의 오만함이었음을.
그동안의 가시 돋친 말들은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의 삶이 힘들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