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프롤로그-1

by 칡칡


나의 어린 시절에도 행복했던 기억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산타가 올 거라고,
산타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던 그 흔한 어린아이였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신비롭고 빛나는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아주 좁았다.

오래된 컨테이너 박스에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그곳이 나의 세상이었다.

내 생일날, 어머니는 내게 처음으로 컵라면을 사 주셨다.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특별한 케이크였다.

그저 평범한 컵라면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라고 믿었다.


유치원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아이들은 비웃었고, 선생님은 코웃음을 치며 나를 무시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의 일이 상처가 되는 뻔한 일은 없었다.

그저 내가 알던 것이 틀린 사실이구나 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 첫 번째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아이는 자기 생일에 케이크를 먹자며 나를 초대했다.
평소에 내 옆에만 붙어 다니며 매니큐어를 해주던 그 상냥한 꼬마아이는 내가 강원도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펑펑 울며 가지 말라 하기도 했었다.


그 꼬마아이의 동정심인지 배려심인지 모를 그런 선행을 고마워하던 시절도 있었다.


강원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잠시 살았을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는 부업으로 인형에 눈을 붙이는 일을 하셨다.

어린 나는 그 작업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작은 손으로 열심히 인형에 눈을 붙이곤 했다.

마치 내 손끝에서 생명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낯선 남성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내 입을 틀어막고 안방 구석에서 숨을 죽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쩌면 그 시간이 오히려 우리 가족이 더 단단해지고 가까워졌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가족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사업이 잘 풀린다고 매일같이 웃음을 띠고 다녔다.


그러나 그 웃음 뒤편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시든 꽃잎처럼 바스러져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어머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고... 나는 이미 눈치를 챈 상태였다.


이제는 아버지라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나오기도 전에, 이미 혐오가 입안 가득 차올랐다.


그 이후부터 우리 집에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이 없었지만 우리 집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낯선 남자가 우리 집 문턱을 자주 넘기 시작했다.


술 냄새와 담배 연기가 벽지에 스며들어 집안 전체가 구역질 나는 냄새로 가득했다.

그 냄새는 내 옷가지며 침대 시트에까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남자와 낮에도 밤에도 술을 마셨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잦았다.


어느 날의 어머니는 내가 편식이 심하다며 술잔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질렀다.

학교에서도 종이 울릴 때면 유리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던 소리가 귀에 맴돌곤 했다.


어떤 날에는 담배 가득한 재떨이가 내 머리 위로 날아왔다.


나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깨진 유리 조각이 내 팔을 긁고, 몸에 박혔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이 성장기가 빠르게 지나가길 바랐다.


몸에 새겨진 흉터들은 매번 피를 묻혔지만,

그것들이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흉터는 아픔을 새겼지만 동시에 버틸 이유였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죽어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싫어졌다.


그 사람들은 내게서 가족이라는 이름을 빼앗아갔다.




어느 날의 겨울
내가 고등학생 1학년이었을 시절,


다음 날 학교에 가기 위해 자고 있던 나를 깨워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외삼촌은 차를 타고 가는 도중 나에게 "너는 이제부터 어른 이어야 해"라는 말을 했었다.


그날의 밤 11시는 어머니라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삶을 내려놔 버린 날이었다.



장례식장에 선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 상황에 놓인 나 자신이 너무나 불쌍해서

멈출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그 일이 있고 2년 뒤 고등학생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우연히 들여다본 가족관계등록부 한 귀퉁이에서

나는 사실을 마주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서류상으로도 나와 아무 관계없는 남자였다.


연락이 끊긴 이유가 그제야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이후

대학 입학금을 벌기 위해 들어간 한과공장의 컨테이너 박스로 된 기숙사에서도

나는 조용히 밤이 오면 숨죽인 채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새벽이 오면 어떻게든 발을 내디뎠다.


그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일이 오기만을 바랄 뿐,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12월 2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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