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마지막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웃고, 식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는다.
누군가 나에게 명절에 어디 안 가냐고 물으면
나는 늘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사실 부러웠다.
그런 가족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명절 연휴의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자취방
차라리 겨울바람만 가득했더라면 나았을까
그곳에는 계절의 추위보다도 더 깊숙이
마음까지 파고드는 외로움과 서러움이 있었다.
대학 시절, 부모님에게 차를 선물 받거나
용돈을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힘들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엄마,
말없이 등을 두드려줄 형이나 누나,
혹은 조용히 들어줄 동생
그런 존재들은 나에겐
그저 영화 속 장면처럼 낯설었다.
내겐 그런 평범함조차 벅찬 꿈이었다.
나는 그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부유한 가정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명절날, 같은 공간에 앉아 밥을 먹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존재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을 원했다.
매달 나가는 공과금에 허덕이지 않고 한 번은 부모라는 존재에게 투정도 부리고 기대보고 싶었다.
혼자 오래 살아보니,
가족이 없어도 잘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젠 없어도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자란 환경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환경이 만든 결핍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결핍은 나를 망가뜨렸고,
그 시절의 나는 역겨웠다.
언제였을까
겨울에 만났던 예전 연인중 한명은 나에게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해야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말을 내뱉는 당당함과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생에서 단 두 발만 쏠 수 있는 총이 내 손이 쥐어져 있었다면,
한 발은 그런 위선 섞인 말을 쉽게 내뱉었던 너에게,
한 발은 그걸 보고 경찰에 신고하려는 누군가에게 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겉멋에만 치중하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네가,
많은 이들이 방관만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내가 당한 침묵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분노하며 따질 필요도 없이 그저 한 발이면 됐을 것이다.
어쩌다 나의 얘기를 듣고는 그럼에도 힘내보자며 목 끝에서 억지로 쥐어짜 낼 위로는 더더욱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한 동정도 싫었다.
누군가 내게 자그마한 동정이라도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말해왔다.
“우리 집도 평범해.”
그 거짓말이 때론 방어막이 되었고,
내 결핍을 숨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예절을 익혔고,
교양을 흉내 냈으며,
무던한 척, 잘 살아온 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내 결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20대 중반의 나는 그 모든 것을 떠나 일에 빠져 있었다.
일은 나에게 구원이었다.
나를 잊게 해주고, 나를 감출 수 있게 해주는 도피처였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를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뤘는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과거가 생각이 나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마다 빈 속에 약을 먹는 것은 일상이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감정들을 미루며,
잊었다.
그렇게 하루를 채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과거의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타인의 모습에서 그 과거의 내가 보였고,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더 미워졌다.
그렇게 나는 한 번 더, 스스로를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