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복층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더운 어느 날
뜨거운 온기가 집 안을 조용히 휘감았고,
고요한 공기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하루가 너무 느린 거 같음과 동시에
나의 과거가,
내일도 처절하게 살아가야 할 나의 상황이 싫었다.
반복되는 정적과 외로움이 겹쳐져 하나둘 커져가기 시작하며,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을 때,
나의 유서를 마무리했다.
뻔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그리고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문장들을 적고 마무리했다.
수면제를 두 알 삼킨 뒤, 2층 난간에 밧줄을 묶었다.
한쪽 끝은 목에, 다른 한쪽은 천장 구조물.
결국 나의 마지막 순간에 닿은 것이
누군가의 따듯한 손길이 아니라 차가운 밧줄이라는 것이 허무했으나,
몇 초 뒤면 의식을 잃은 상태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눈을 감고,
생각을 비우고,
1층으로 몸을 던졌다.
몸이 바닥에 닿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무릎과 팔꿈치에 전해진 충격,
차가운 1층의 바닥,
올려다보니 남아 있는 건 끊어진 밧줄뿐이었다.
복층으로 이사 온 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데....
당시 새로운 밧줄을 구매할 돈조차 없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던 시도는,
너무도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참했다.
쓰디쓴 수면제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듯 매스꺼웠다.
입안은 바짝 말라 혀가 잘 돌지 않았다.
남은 밧줄로 어떻게든 다시 시도하려 잠시 고민했다.
그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할 틈도 없이 전화벨이 울렸고...
휴대폰을 끄기 위해 화면을 확인했지만 이름을 보고 난 후엔 끌 수 없었다.
숨을 고르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밧줄을 풀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멍하고 손이 떨렸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섰다.
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바깥공기 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와 함께,
식은땀과 수면제의 기운이 뒤섞여 속이 울렁거렸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걱정과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그 전화는 가장 믿고 의지했던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다.
연락이 너무 없어 걱정했다는 친구의 말로 시작해서,
이틀 뒤에 우리 집에 놀러 온다는 친구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한 통의 전화는 오랜만에 들은 '살아 있음'의 소리였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머리는 텅 빈 듯 멍했으나,
이는 수면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아직 누군가의 안부 속에 남아 있다는 것,
친구의 전화 한 번으로 이런 따스함을 느꼈다는 것에 나 자신의 정신이 나약했음을 깨달았고,
어쩌면 그 밧줄이 끊기지 않고 너의 전화가 울렸을 때,
밧줄에 묶인 채로 몸부림치며 후회했을 수도 있었을 나를 생각하며,
나는 살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은 채로 거실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왜 이토록 다정한 사람이 내 삶에 있었는가,
그 다정함이 왜 내 마지막 순간을 뒤흔들었는가,
그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울고 나서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밧줄과 주변을 정리했다.
그제야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 손과 발을 씻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내일을 기다리며 잠에 드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틀 뒤, 당일
그날, 너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그날, 네가 툭툭 건넨 말들이 낯설게 따뜻했다.
그날, 너와 나눈 대화들 덕분이었을까,
그날, 오래도록 비어 있던 내 삶의 구석이
너의 따뜻한 위로 몇 마디에 조용히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두 번 다시 그런 선택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루가 아닌, 매일을 살아보기로 했다.
삶은 여전히 낯설었고
하루는 자주 무뎠다.
그러나 살아 있는 지금의 온도가
죽음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 온기를 아주 작게나마 기억했다.
그리고 그날 네가 내게 해준 조언들대로,
그 작은 기억 하나로도
살아보기로 했다.
하루가 아닌 매일을 살아보기로 했다.
하루가 느리더라도, 삶이 무뎌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