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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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칡칡


그 이후에 나는 친구의 조언대로 하나하나 취미 생활을 찾아 나갔고,


예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들과도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게 책을 건넸고,

그 계기로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이나 보내자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점점 글의 흐름과 활자의 깊이가 나를 위로해 주는 걸 느끼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또 위로받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가끔은 당신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때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을 되새기곤 한다.



그리고 활자의 위로 속에 잠시 머무는 그 시간이,

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고,


나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타투로 새겨주었다.


바늘 끝이 살을 스칠 때,

퍼지는 미세한 통증이

내 과거와 내 몸을 함께 묶어주는 듯했다.


사람의 뼈대와 식물을 합쳐 생명력을 나타내는 듯한 문양


나는 지금도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당신이 내게 새겨준 마음을,

이 타투를 어루만진다.



누군가는 나를 밴드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함성 가득한 페스티벌의 열기를 기억한다.


그곳에서의 함성은 파도처럼 몰아쳐, 내 마음 한구석까지 흔들어 놓았다.


처음 경험한 슬램존의 열기와 부딪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즐거움이 나를 따뜻하게 했었다.


진흙탕 속에서도, 빗물에 젖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걱정 따위 잊고, 그저 그 순간을 만끽했다.


강렬한 일렉 기타가 불꽃처럼 터져 나오고,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가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묵직한 드럼 비트는 심장을 두드리고,


베이스의 낮은 선율은 노랫결 사이사이를 이어주며 숨결처

럼 흘렀다.





그 즐거움은 중독이 되어버렸다.


한 번 빠져든 뒤로는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저녁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우리는 맥주와 간식거리를 들고,


잔디밭에 앉아 여유롭게 공연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

당신과 맥주잔을 부딪히며 마신 시원한 한 모금,

그 순간의 청량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낯선 일본의 거리를 함께 걸어주었다.


처음 느껴본 교토의 초가을은,

회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없이

그저 자유를 만끽하며 숨 쉬듯 여유를 느끼게 했다.


그날,


해가 기와지붕 위로 천천히 스며드는 골목길에서

나는 황혼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곳에 와 있는 내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밤공기의 선선함이 스치듯 스며들어와

한껏 달아올랐던 마음을 식혀주었다.






교토 특유의 건물 풍채


길가에 놓인 작은 가게들


마치 시간이 머무는 듯한 풍경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낮게 깔린 기와지붕과


곳곳에 걸린 종이등불,


가게 문앞을 수줍게 밝히는 작은 전등들,


그 모든 것이 골목골목마다 제각각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면,

작은 찻집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말차 향이 코끝을 간질였고,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면

대문 위의 풍경이 은은하게 울려

골목의 고요함 속에 작은 음악처럼 스며들었다.


그 정적 속에 나는 잠시 멈춰서서

교토가 품고 있는 깊은 숨결을 느꼈다.


그곳의 조용한 분위기는

언제까지고 내 눈과 마음에 선명히 새겨져,

내가 다시 교토를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바람결, 그때의 소리, 그때의 공기마저도

모두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갔다.


손에 들려 있던 차가운 캔맥주 한 캔....


그리고 당신과 나눈 이야기들...


그 순간들이

지금도 내 귀와 눈, 머릿속에 잔잔히 남아 있다.







누군가는 내 노력을 눈여겨보았고,

그 덕분에 나는 해외로 떠날 수 있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건 단순한 출장이 아니라,

타국의 현지인들과 직접 지식을 나누고,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렇게 도착한 낯선 땅에서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벅찼다.




설계 도면부터 외주업체에 의뢰하는 과정까지,

내 손으로 직접 그 모든 과정을 챙겨야 했다.


낯선 언어가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현지 사람들과

어떻게든 대화의 끈을 이어갔다.


처음엔 그저 말이 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조금씩 서로의 언어가 익숙해질수록

그들은 내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나 또한 그들의 기술과 지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도면을 수정하며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위해 노력하던 그날들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의 피로감과 긴장감마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젝트는 무사히 완성되었고,


현지 사람들의 박수와 고마움이

나에게 돌아왔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올려다 본 저녁 하늘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그 기분,

성취감,


나는 앞으로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나는 깨달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두려움도

내가 받아들여야 할 또 하나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또한 멕시코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고,


타국가의 문화와 사람들을 탐구하는 즐거움이,

내 삶의 한 축이 되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내 직업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길을 걸어오게 해준 모든 기회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는 내게 식물을 키우는 재미를 알려주었다.


어릴 적엔 초록빛 나뭇잎 하나에도 무심했던 내가,

당신과 나눴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이 들려주던 이야기는

작은 씨앗이 싹을 틔워 잎을 넓히는 그 과정이

얼마나 경이롭고, 또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 한구석에 작은 화분을 들여놓고,

마치 나의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고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지금 키우고 있는 몬스테라는

처음에는 작은 화분 속에서 연약한 줄기만 겨우 내밀었지만,

이제는 커다란 잎사귀를 힘차게 뻗으며

창가를 환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몬스테라의 잎사귀를 바라보며,

어제보다 조금 더 넓게 펼쳐진 초록빛에 미소 지었다.


물을 주며 잎을 닦아주는 그 짧은 순간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되었다.


잎사귀 하나가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가 조금씩 지나가는 행복을 느끼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당신이 가르쳐준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며

조금 더 따뜻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의도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내 삶의 틈 사이로 하나둘 들어왔고,


내 마음 속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바란 것도, 내가 그들을 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마음 한복판에 뿌리를 내렸고,


서서히 나를 덮어주며 안아주었다.






자연이 사람을 품듯,


그들은 나를 그렇게 품어주었다.


나는 더 이상 꾸며내거나 숨길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설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내 안의 작은 모습까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고,


조금씩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밝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인연들이 언젠가는 흩어질 수도 있다.


연락이 뜸해질 수도 있고,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이 올 때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또 다시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다.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오랜 시간을,


아니면 짧은 순간을 고통 받고 잊혀졌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그들 덕분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침묵으로 얼룩진 계절을 지나,


많은 이들의 온기가 스며든 내 마음은


그 따스함에 이끌렸다.


상처로 가득해 무너질 듯한 자리 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연약한 꽃 하나가 피어났다.


침묵으로 얼룩진 계절을 지나,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기다려온 듯,


봄이라는 이름조차 몰랐던 내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피어났다.



나는 이제 살고 있다.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보여준 빛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보여준 빛에 닿았다.


나는 더 이상 내 마음 속 허기가 들끓지 않았다.


그렇게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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