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고 싶다
어느 3월의 시원한 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눈부신 햇살 아래,
친구들과 한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가볍고 투박한 대화 속에도, 그날 우리가 나눈 시간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익숙한 이야기, 반복된 웃음
겉보기엔 단순한 흐름일지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더없이 깊고 따뜻했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모였고,
다시 각자의 삶과 할 일 속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나는 문득,
헤어짐이 다시 만남을 피워낸다는 것이,
그리고 만남은 또다시 각자의 시간 속으로 흩어져 간다는 것이,
벚꽃이 피고 지는 이 계절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느 8월의 무더운 여름
보람 있는 일에 땀을 흘리고,
태양 아래에서 바다의 시원함을 느끼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곳은, 내 집이었다.
에어컨을 켠 방 안,
책상 위에는 시원한 캐모마일 티,
헤드셋을 끼고 크툴루 시리즈를 펼쳐든다.
위로가 되는 책도 좋지만,
여름의 열기 속에서는 서늘한 공포가 더 끌렸다.
무더운 계절 속, 나는 그 서늘함에 조용히 몸을 기대곤 했다.
어느 10월의 가을
베이스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잔잔히 울려 퍼지는 저음의 진동이 마음을 적셨다.
그 소리는 마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악기로 대신 전하는 듯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헤드셋을 연결한 뒤,
노래에 맞춰 베이스를 연주한다.
녹음 프로그램을 켜고, 강의 영상을 보며 한 음씩 배워간다.
그 시간이,
가을에 보냈던 나의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정적이 더이상 두렵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어느 12월의 추운 겨울
밖에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좋았고,
모닥불 앞에서 따뜻한 감성에 젖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곳은, 역시 내 집이었다.
책상 위엔 따뜻한 홍차와 팬케이크,
그리고 네 번째 줄이 망가진 통기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며,
여름에도 서늘했던 이 복층에서,
이제는 시원함을 느낀다.
처음으로 여유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케이크를 사서 초를 붙이고 소원을 빌기도 하며,
이 소중한 하루를 만끽했다.
나의 소원은 남들이 흔히 평범하게 비는 소원이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
로또 1등 당첨..
사랑하는 누군가와 내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
이 평범하고 감사한 하루들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초를 불었다.
그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날들을 보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 계절을, 이 소중한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은 기쁨이 생길 때마다
그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겼다.
그래서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내가 느낀 좋은 감정들, 내 마음에서 가장 좋은 부분들을
언젠가 내 옆에 있어줄 ‘당신’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기회가 온다면,
남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바다나, 아니면 한강이 가까운 집에서
리트리버 두 마리, 당신, 그리고 나.
그렇게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과 함께 보낸 하루에
아름다운 추상들을 섞어 천천히 써 내려가고 싶다.
당신과 나눈 행복과 슬픔들을 기록하며
느린 하루를 함께 걷고 싶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계절마다 당신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고 싶다.
봄에는
당신에게 커피나 차를 내어주고,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꽃구경을 나가 기뻐하는 당신의 얼굴을 눈에 담고 싶다.
옆에 기대어 앉은 당신과,
서로의 심장 소리를 나누며 감정을 마주하고 싶다.
벚꽃이 피고 지는 이 계절이
아름답다는 것을 당신과 함께 느끼고 싶다.
여름에는
내가 준비한 아침을 먹은 후,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당신과 놀이공원에 가거나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당신의 기분이 흐린 날엔,
카페에 가서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그 기분을 식혀주며 얘기를 들어주고 싶다.
가을에는
점심을 함께 먹고,
그 시간 자체가 영겁 같아도 좋을 만큼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
식사 후엔 LP를 틀고, 숨을 나누며 음악을 듣고 싶다.
이 시간 만큼은 소란스러워도, 조용해도 좋을 것이다.
겨울에는
배가 부르다면서도 디저트를 찾는 당신을 위해
홍차를 따르고, 팬케이크를 구워주고 싶다.
저녁을 함께한 뒤엔 눈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겨울은 춥지만,
당신과 함께 눈을 마주보는 그 시간은 분명 따뜻할 것이다.
모두가 ‘영원’은 없다고 말할 때,
나는 ‘평생’을 약속하고 싶다.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지나는 사계절과 좋은 추억이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었듯,
나는 당신과 함께 사계절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고 싶다.
당신이 나의 곁에 있어주기를,
내가 당신의 곁에 있기를
주제넘지만,
나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