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야의 시작

프랑스 이야기 4

by 홍유나

팬데믹이라는 태풍이 지나가고, 이제는 정말 (나만 잘한다면) 순탄히 잘 흘러갈 것 같았는데 더 큰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강의들을 하나씩 듣는데 시스템이 너무 의아했다. 합창 수업, 1:1 개인 레슨, 합주, 시창청음 등 다양한 강의가 있는데 나이가 어린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까지 이상하리만치 뒤죽박죽 섞인 이들과 함께 '도레미파..' 기초에 기초를 배우는 수업을 듣는가 하면 뮤지컬 관련 수업이 아닌 일반 보컬, 성악 발성에 취중 되어있는 수업들만 듣고 있는데, '내가 아는 석사과정이 이게 맞다고?' 정말 이상했다.


당시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겨우겨우 자기소개와 인사 정도만 할 수 있었던 나는, 같은 년도에 나처럼 배우기 위해 소개받고 온 친구와 함께 프랑스어를 잘하는 한국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학교에 다시 찾아갔다.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짧게 하고 물어봤더니 우리가 알고 왔던 것이랑 다른 시스템임을 알게 되었고, 뮤지컬과 가 당장 생긴 것이 아니라 생길 예정이며 그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 학년을 패스해야 하는데 내가 현재 위치해 있는 과정이 완전히 기초반이라 당시 기억으로 5년 정도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프랑스 오기 전에 여러 번 드린 질문에 확실히 맞다며 이것저것 듣고 왔던 교수님의 이야기랑 다른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후, 학과장님까지 만나서 다시 여쭤보았지만 시스템 자체가 이래서 어쩔 수 없다며 우선은 기초반에 들어가고 교수들이 나의 실력을 보고 학년을 올린다는 말 밖에 듣지 못했다. 패스한다 하더라도 어떤 단계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이 디플롬(자격증)을 딴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한국에서 석사를 끝내고도 남을 기간이었다.


하나하나 다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서 요약하면 대충 이러한 상황이었다.


너무 황당했던 나는 소개해준 교수님께 따로 넘어왔던 한국 친구와 함께 급한 대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간은 새벽이었을 것이다. 전화를 받은 교수님께서 얘기를 들으시고는 한마디 하셨다.


" 그 얘기를 지금 이 시간에 나한테 하면 뭘 어떡하라는 거니? "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우선 얘기를 마무리하고 통화를 끊었다.


이 일이 코로나를 거치자마자 같은 해에 생긴 일이었다. 코로나 기간도 덤덤하게 잘 흘려보냈었는데 그것보다 나에게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잘 버텨왔으니 앞으로 잘해보자 했는데 지금보다 더 강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멘털이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들어간 돈도 많았고, 내가 버텨온 시간들과 모든 것이 뒤섞여서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사실 상황 정리도 제대로 안 됐었고, 이걸 처음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서 해결하고 해 나가야 될지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너무나 허무하면서도 스스로 더 잘 알아보고 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과 나 자신을 한탄하기도 하고 자책도 정말 많이 했다. 유학원을 통해서 왔던 것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혼자 알아보니 보였던 틈과 너무 사람을 믿었던 탓에 더 신중하게 알아보지 못하고 와서 겪어야 했던 그 시간들이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나를 탓하는 바늘 같은 시간이었다.


난 지금까지 뭘 위해 아등바등 버티고 왔던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심적으로 굉장히 지치기 시작하고 급기야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어디 홀린 사람처럼 2주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고 잠만 자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나를 계속해서 짓눌렀던 것 같다.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래도 우선 다녀보자 했던 학교도 무언가 속에 꽉꽉 막혀있다 터졌는지 부모님께 중단 선언하며 내가 스스로 내 길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선포는 했지만 그냥 스트레스 속에서 벗어나려고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흘려보냈던 것 같다.


나는 본래 지나간 일은 최대한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뒤끝도 없고, 이미 일어난 일에선 과거를 헤집거나 하지도 않고 일어난 일에서 느낀 게 있고 내가 얻은 걸로 덮어버리고 앞으로에 대해서만 계산하고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땐 그게 잘 안 됐던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들어서였을까, 살아오면서 크게 실패하거나 낙담하는 일을 잘 겪어보지 않았던 내가 그 일을 겪었을 때 처음 느껴보는 좌절과 절망과 두려움이 휩쓸어서 그랬던 걸까, 가족들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가서 잘하고 오겠다고 다짐하고 가서 잘하고 있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계속해서 막혀가는 모습들만 보여서 그랬던 걸까?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없고, 내 손으로 손 볼 수도 없는 일들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기니 아마 그때 나의 힘듦을 100% 그대로 다 티 내고 다녔다면 사람들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보기에 엄살 부린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지극히 나로서는 정말 몸도 마음도 지쳤었다.


그런데 그런 꺾여버린 시간들에 푹 빠져 지내면서 서서히 느끼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아무런 말도, 아무런 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과의 대화만 많이 나누니까 마음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마음의 여유도 찾아가고, 생각과 방향도 선명하게 잡혀갔다. 아무런 힘을 주지 않고 흐름에 맡기기만 했는데 말이다.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 들어서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해봐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주변에서 나를 위해 위로해 주거나 조언의 말을 건넬지라도 그때 잠시 괜찮아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인간의 연약한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정말 내게 필요한 시간들을 가졌다.


지금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들이 나를 성숙시키고 성장시켰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그리고 나와 닿는 모든 인연들까지도 다 저마다의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어지는 모든 일들도 무언가 느끼게 해 주려는 하늘의 계획.

나는 내가 느끼면서 발전시킬 부분은 발전시키고 이럴 때일수록 더 차분하게

오히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나에게 광야의 시간이 시작되면서 나는 내 무의식을 끄집어내는 능력을 키웠고,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에게 외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매사에 불평불만 하지 않고, 말도 아끼고, 이성적이고 슬기롭게 지혜롭게 앞날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결국 다시 나에게 그대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며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