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야기 5
앞에 썼듯, 이런저런 복잡했던 상황들 끝에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한 후,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021년에 드러 섰을 때였다.
평생을 음악만 해왔던 사람이라 나는 고민하며 우선 한 곳에만 집중했다. 재즈보컬, 실용음악, 뮤지컬 극단, 합창단, 성악, 지휘, 뮤지컬 파리 학교, 영국... 등등 알아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음악 안에서도 분야가 다양한 만큼 솔깃하고 흔들리는 분야들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왜일까 생각해 보았다. 뮤지컬이 아니라서? 자신이 없어서? 두려움이 커서?
아니었다. 내가 먼저 생각해야 할 건 이 부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했다. 처음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모든 문을 열어놓고 보니 놓치고 있었던 건 나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가?
하나하나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말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냥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한 우물만 파야 되지? 코로나 이후에 미래가 앞당겨져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업이 올라오는가 하면 다양한 일자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디지털 세상의 시작이 열렸다.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보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 우물만 파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만들자. 예술을 하나로 합치자.
그리고 이것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자.
그래, 이거다.
동시에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구할 것을 구했다. 낙동강 오리알이니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소에 내가 생각하지 못할 만한 아이디어들과 영감이 떠오르는가 하면 떠오른 아이디어에 관련된 단체나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선명해져 가면서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방향을 잡아갔고,
'무엇이든 잘하려면 먼저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라는 어디선가 본 문구가 깊이 박혀 전문성을 먼저 키우기 위해 나의 방향과 제일 가까운 전문 분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곳 아비뇽에 있는 것이 맞을까? 이 비전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기에 아비뇽은 너무나도 작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도시였다.
파리로 가야겠다
그렇게 나는 결국 아비뇽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파리로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 모든 나의 생각과 방향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10년 이상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돈을 투자해서 해온 음악을 내려놓고 이 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어떻게 반응하실지 사실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 확고했기에 나름의 정리를 해서 부모님과 영상통화로 이야기했다.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큰 채로 얘기를 하니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아버지께서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한 거냐, 네 인생이니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대신 어중간하게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해라. 끝."
어머니께서는
"엄마라면 프랑스까지 갔는데 배낭 하나 메고 이 도시 저 도시 다 한 달씩 살아보겠다. 도전해라."
나는 부모님 덕분에 문을 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밀어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나도 있었고 이 모든 것이 정말 귀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디자인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로 바꾸게 되었고,
1년 반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독하고 고독했던 광야를 지나면서 인생의 두 번째 문을 열기 위해 아비뇽과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