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콘텐츠 기획자의 조금 덜 지루한 육아
복직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 왔다.
슬슬 모유를 끊고 분유로 넘어가야 할 때
업무 프로세스처럼
자료 서치 > 가설 설정 > 변수 체크 > 컨셉&예산 수립 > 킥오프
로 진행하던 중
대대대변수가 생겼다.
아기가 분유를 한 모금도 소화하지 못한다.
소화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분.수.토
저 조그만 아이가
고래 숨구멍처럼
분유 분수를 뿜어내는데
아찔했다.
이건 마치
주력 상품 출시일을 코앞에 두고
KC 검사에 탈락한 것 같은
난감 당황 멘붕 상황이다.
X발락, X타밀, X센서티브, 유기농X 등
시중 분수들 모두 실패.
종의 문제가 아니라면
비율을 바꿔볼까?
화학 연구생처럼 실험에 들어간다.
모유 50% + 분유 50% - 탈락
모유 60% + 분유 40% - 탈락
모유 70% + 분유 30% - 탈락
사출 컬러 정할 때가 떠올랐다.
하늘 아래 같은 노랑 없고, 같은 핑크 없다.
딸기우유 같은 핑크긴 한데 보라끼가 한방울 있었으면
머스타드 노랑 말고 레몬 노랑인데 좀 더 쨍했으면
근데 이걸 외국인에게 설명해야한다면?
‘보라끼’ ‘쨍했으면’을 영어로? 중국어로? 어떻게?
가장 쉬운 방법은 딱 맞는 컬러 샘플을 찾는 것이다.
실제 제품 개발 과정 중에
말, 글 없이 그냥 보여주는게
나을 때가 훨씬 많다.
지류로 된 팬턴 칩은 한계가 있다.
직접 시장으로 나간다.
내 머릿 속에 있던 그 색을 발견했을 때,
심지어 유사 재료로 만들어진 것을 봤을 때,
그 희열이란!
명확한 컨셉과 공을 들인 시간과 발품이 있다면
'바로 그 적절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 육아 세계에선…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다시 ‘모유:분유’ 실험으로 돌아오면,
모유 80% + 분유 20% - 탈락
모유 90% + 분유 10% - 탈락
.
.
.
대망의 모유 99% + 분유 1%
오! 이번엔 좀 버티는데? 소화시킬겸 산책할까?
유모차에서 분수토. ^^
탈락!
한 모금, 아니 한 방울의 분유도
소화해내지 못하는데
야매 화학 연구생은 두손 두발 다 들고 만다.
더 이상 아이를 괴롭힐 수 없었다.
수많은 분수토 동안
빨래와 바닥 청소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건
정해진 복직 일정에
아이를 강제로 맞추려고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인상 좋은 소아과 의사 선생님 말씀,
“회사에 유축기 들고 다니면서 모유 수유 하시면 되죠, 허허.”
“아.. 하하… ^^;”
워킹맘 대학동기와의 통화
“너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
난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육아휴직은 연장되었다.
기획한 대로 안 되는 육아, 그러나 해결책은 있다.
아니, 차선책은 언제나 있다.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궁한 변수들.
변수값이 아닌 상수값으로 설정해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