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0세 보스와 스토리 회의

유아 콘텐츠 기획자의 조금 덜 지루한 육아

by 피카부

이 다섯 가지 말로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육아 도와주러 온 친정 엄마에게)

“엄마, 왔어?”

“응~ 조심히 가~”


(퇴근한 남편에게)

“애기 목욕물 좀”

“저녁 뭐 시킬까?


(수도 없이 나오는 혼잣말)

“어,,, 왜 이러지?!?!”


산후조리원 퇴소 후

육아 경력 6개월


만성 수면 부족

각종 관절 통증

우수수 흩뿌려지는 머리카락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건

급감하는 어휘력이었다.


콘텐츠 기획자의 중요한 자질은

(당연히) 기획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라고 생각한다.


보스와 팀원은 말할 것도 없고

협력 및 유관 부서인

디자인팀, 제작팀, 마케팅팀, 영업팀과의 각종 회의들


사외로는 외부 필진을 비롯한

외주 일러스트레이터들, 외부 업체들과의

끊임없는 의견 조율.


정확한 단어 선택과 간결한 문장

허를 찌르는(상대를 조지는) 화술력이 빛을 발한다.


오고 가는 덕담 속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프로젝트 들어가기 직전과

종료 후 한 달쯤 후

(가시적인 성과가 보였을 때, 작업료 지급이 완료되었을 때) 정도다.


근데 지금 나는

.

.

.

스벅에서 아아 시키는 것조차

버벅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하려는데.

어… 하나요, 네? 아.. 사이즈… (대답 안 하고)

음… 먹고 가도 될게요 ”


이렇게 '안녕갑습니다' 수준으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결제 안 하고 돌아서기까지.


복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말을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대화 대상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0세 보스.


내 새끼 앞에서 창피할 것도 없고

엄마인 내가 종알종알 얘기를 들려주면

모녀간 유대감에도,

아이의 청각 인지 발달에도 좋을 것 같았다.


음, 어떤 얘기를 하지,

초등 저학년 대상 동화 전집 기획할 때가 떠올랐다.


시장조사를 통해

전집의 주제, 결, 톤, 볼륨이 결정이 되면

각권의 세부 주제 및 소재 아이템을 위한

기나긴 스토리 회의가 이어진다.


독자 연령들의 인기 아이템, 유행어, 말투, 놀이 문화,

교육 키워드, 베스트&스테디셀러들의 소재.


익숙하지만 올드하지 않고

새롭지만 어색하지 않은 것들을 발굴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조합하여

대강의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를 잡는다.

그리고 가장 잘 적합한 작가를 매칭한다.


이렇게 시작된 0세 보스와의 스토리 회의!


"꼼꼼님~

요즘 땡 회사에서 출간된 이러이러 책의 반응이 좋은데요

우리는 이 주제와 이러저러 캐릭터를 섞어서

구구절절절절절절~~~"


피드백 대신 뿌우우 투레질,

컨펌 대신 구수한 응가 냄새뿐이지만

이렇게라도 조금 덜 지루한 육아를 할 수 있다니


예전 말빨이 조금씩 돌아오고

가끔은 꽤 쓸만한 스토리들도 발굴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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