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1)

by 몸냥필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가수 남진의 명곡 <님과 함께>는 나의 오래된 로망이었다.

일곱 살부터 무려 38년을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같은 네모난 상자에서만 살았다.

6평 원룸부터 시작해서 25평을 넘겨본 적이 없는 도시 근로자에게 ‘마당 있는 집’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명절마다 겪는다는 ‘지옥의 귀경길’조차 내겐 부러운 남 이야기였다.

친척들 모두 서울, 인천, 수원, 성남, 창원 등 도시 한복판에 살았으니 내 성장기엔 ‘시골’이나 ‘촌’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마당 있는 집, 소박한 텃밭과 화단이 있는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내 님과 반평생 살고 싶었다. 이 로망이 결혼이라는 거대한 결심을 ‘덜컥’ 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번갯불에 콩 볶듯 치러 낸 결혼이라 신혼집을 마련할 겨를이 없었다.

예랑은 서귀포 표선면에 직장이 있어 기숙사에, 나는 제주시 화북동 2층 양옥 주택에 세 들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제주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월세’가 아니라 ‘연세’라는 개념이다. 말 그대로 1 년치 월세를 입주 전에 한꺼번에 내는 방식이다.

보증금에 연세까지 얹어 내자니 부담이 컸다. 연세를 선납하는데, 보증금은 왜 또 받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보증금이란 임차 계약 위반이나 월세 연체에 대비한 장치였으니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원래 제주에서는 보증금이 한두 달치 월세 정도의 소액이었다는 것이다. 연세를 내는 구조라 굳이 큰 보증금이 필요 없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육지 사람들이 유입되며 보증금 규모가 커진 ‘혼종’ 문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입도 첫해, 제주 시내에서 살 때는 남은 연세기간을 물려받는 ‘승계’ 집만 골라 다니는 꾀를 부렸다. 덕분에 일 년 동안에만 무려 아홉 번이나 짐을 싸고 풀었다.


그러다 반년쯤 연애 중일 때 그가 화북동을 추천했고, 나는 그곳에서 집을 구했다. 제주시 화북동은 80년대 정취가 남은 원도민 마을이었다. (봄이 오면 왕벚꽃 가로수길이 활짝 피어나,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이루는 낭만의 마을이 된다.)

덕분에 보증금 50만 원, 연세는 360만 원이라는 부담 없는 돈으로 좋은 집을 구했다. 계약은 2년, 한 번 더 연세를 내고 살았다.


제주에는 이사 철이 따로 있다. 봄? 가을? 아니다. 제주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이사 시즌은 바로 ‘신구간(新舊間)’이다. 대한(大寒) 후 5일부터 입춘(立春) 3일 전까지, 딱 일주일 남짓한 기간이다.


육지의 ‘손 없는 날’ 개념이 제주에서는 ‘신구간’으로 통한다. 가전, 가구 매장마다 걸린 현수막도 ‘봄맞이 세일’이 아니라 ‘신구간 세일’이다. 화북의 집주인 노부부 또한 집이 비어있는데도 신구간에 이사와 달라 요구했다.


한 겨울, 추워 죽겠는데 웬 이사냐 싶겠지만, 여기엔 기막힌 신화적 배경이 있다.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제주 원주민 노년층은 여전히 따르고 있는 문화이다.


신구간은 말 그대로 구신(舊神)이 떠나고 새신(新神)이 오기 전 사이를 일컫는다. 이 시기에는 집안 구석구석을 지키던 수호신을 비롯해서 조상신과 1만 8천 신들이 임무 교대와 업무 보고를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즉, ‘신들이 자리를 비워 감시가 소홀한 빈 틈’을 타서 평소 금기시되던 집수리나 이사를 하는 것이다. 신의 노여움을 살까 걱정할 필요 없는 일종의 합법적 빈틈 공략이자 동티를 피하는 지혜로운 꼼수인 셈이다.


홀로 제주에서 떠돌며 스무 달을 살다 보니 살림이 제법 불어났다. 그가 친구의 1톤 포터를 빌려와 꾸역꾸역 짐을 싣고, 신구간에 맞춰 화북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많은 육지인의 유입으로 ‘연세’나 ‘신구간’ 이 바뀌어 가고 있다. 풍습이 바래가지만, 제주에 살려면 제주 법을 따라야 하는 법.

육지에서 온 뜨내기였던 나 역시 제주 신들이 출장 간 사이, 무사히 새로운 보금자리로 '잠입’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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