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제주도 3대 해수욕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함덕으로 시집을 왔으니, 초원이 바닷가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꿈꾸며 노래 불렀다.
주위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육짓 것 지인 중에 잇티제는 “땅값 비싼데…”라며 계산기를 두드렸고,
엔프티는 “와, 멋지겠다!”라며 눈을 반짝였다.
토박이는 단칼에 잘랐다. “미쳤주게?”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은 그냥 그림일 뿐,
현실은 크게 달랐다.
염분 때문에 집이 금세 삭아버리고,
햇볕 때문에 색이 빠르게 바래며,
수분 때문에 곰팡이는 여름 단골 세입자처럼 자리 잡는다.
‘설마, 잘못 지은 집이겠지.’
살아봐야 이 말을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 결혼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준 예랑의 베프가 있었다.
김포에서 큰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성공한 그 친구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옛집을 우리 부부에게 선뜻 내주었다.
그 집은 친구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목수였던 아버지가 손수 대들보를 얹어 지은 50년 가까이 된 제주 전통 돌집이었다.
함덕해변에서 도보 8분 거리, 대지 130여 평에 건평 18평짜리 바닷가 제주 전통 돌집.
듣기만 해도 그림 같은 풍경이 그려졌다.
인테리어와 수리는 우리가 부담하기로 하고, 무려 10년 무상 임대라는 파격 조건이었다.
게다가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느라 이사비용과 수선재료비까지 챙겨주었다니, 이쯤 되면 ‘베프’가 아니라 ‘월하노인’이었다.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인천에서 먼 길을 날아와 준 내 친구 부부와 술을 진탕 마시고, 우리의 ‘첫 집’을 사전 방문했다.
나는 말로만 듣고 있었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집은 리조트 후문에서 걸어갈 만큼 가까웠다.
그런데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리를 삼켰다. 팔짱 낀 남편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대문도 없는 마당으로 들어섰고,
오롯이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시멘트바닥을 더듬으며 걸었다.
집 현관 새시문에 손이 닿기도 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엄마야!”
술이 확 깼다.
종아리께로 고양이들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있었다.
폰 불빛이 사방을 비추자, 마당에 고양이들로 가득했다. 족히 서른 마리는 넘어 보였다.
내 비명에도 고양이들은 울지 않고 우리를 노려봤다. 자체발광하는 고양이들의 안광에 소름이 끼쳤다.
고양이를 오래 키운 인천 친구조차 뒷걸음 칠 정도였으니,
나는 그야말로 얼음동상처럼 굳어버렸다.
남편은 둘러보다가 “아직 이사 안 간 것 같아, 물부엌에 짐이 있네.”라고 했다.
(참고로 제주에서는 다용도실 같은 제 2 부엌 용도를 ‘물부엌’이라 부른다.)
나는 울먹였다.
“그냥 가자, 빨리.”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깊은 산속 폐가 그 자체였다.
나중에 전해 들을 이야기지만,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는 게 원만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악소문까지 퍼져 있었다.
‘노모를 모시고 어린아이 셋을 키우는 가난한 부부를 쫓아낸 파렴치한 놀부 부부’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좀 억울해서 하소연하자면,
그 부부는 애초에 주인 허락 없이 전전세로 살던 것이었다.
게다가 집을 얼마나 험하게 썼던지,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자 땅속에서 끝도 없이 쓰레기가 터져 나왔다.
결국 미니 굴착기까지 동원해 땅을 파내고, 트럭으로 산업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비용까지 고스란히 우리가 감당해야 했다.
로망 가득한 마당 있는 집의 첫 단추가 ‘고양이 부대’와 ‘쓰레기 산’이라니.
하지만 돌이켜보면, 시작은 어둡고 소름 끼치는 호러였지만, 결국 ‘폐가’를 ‘스위트 홈’으로 변신시켜 가는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