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3)

by 몸냥필



제주의 전통 가옥은 안거리 (안채)와 밖거리(바깥채)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답게 마주 보는 구조지만, 우리의 첫 집은 안거리 하나만 덜렁 있는 단출한 구성이었다.


수십 년 전,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제주도 재래식 변소인 ‘통시’를 야외화장실로, 돌벽은 시멘트로 보강하는 대대적인 개량이 한 차례 있었다. 그래도 낮고 경사진 지붕, 거친 현무암 벽체 등은 제주 돌집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투박한 제주 돌집들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 왠지 귀한 보물을 맡은 기분마저 들었다.


130평 대지 한가운데 북동향으로 자리 잡은 집은 구조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양옆을 확장한 직사각형 형태였는데, 정면에 두 개, 뒷면과 옆면에 하나씩, 입구만 무려 네 곳이었다. 세 곳은 주거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독립적인 보조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우리는 이 집의 ‘뼈대’만 빼고 몽땅 바꾸기로 했다. 50년 세월을 버틴 돌벽과 내벽, 그리고 든든한 대들보만 남겨놓은 채 속살을 전부 긁어내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야외 화장실 역시 벽체만 남기고 철거를 시작했다.


그런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등골 서늘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주에서는 화장실을 손댈 때 반드시 망치로 벽을 세 번 두들겨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화장실을 관장하는 가택 신(家神)에게 ‘저 여기 좀 고칠게요!' 하는 신호이자 동티가 나지 않게 하는 액막이 의식이었다. (동티: 신의 노여움으로 재앙을 받는 일)


“아니, 그런 건 공사 시작 전에 알려줬어야지!”


이미 화장실은 벽체만 남기고 헐린 상태였다. 찝찝함에 잠을 설칠 판인데, 남편은 태연했다.


“걱정 마. 나 밥 먹을 때 막걸리 한 잔씩 고수레했어.”


설레발치는 아내를 안심시키려는 거짓말인지,

정말로 막걸리 고수레가 대신한 건지는 알 길 없지만,

남편의 말에 찝찝했던 마음은 씻겨 내려갔다.

(고수레: 들에서 음식을 먹기 전 조금 떼어 허공에 던지며 ‘고수레’라고 외치는 풍습, 행운·풍년, 안전을 기원하고 신에게 예를 바치는 의미)



우리의 신혼집은 그야말로 남편의 ‘피, 땀, 눈물’로 세워졌다.

역설적이게도 공사의 일등 공신은 코로나였다. 회사가 단축 근무에 들어가며 주 4일 무급 휴직이 시작되자, 남편은 작업복을 갖춰 입고 연장을 들었다. 그렇게 8개월간, 남편은 회사원과 목수를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며 폐가 같던 돌집에 숨을 불어넣었다.


건축법상 기존의 18평 구조를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내부는 환골탈태했다. 지붕은 세련된 금속 징크로 올렸고, 화장실 겸용 욕실을 주거 공간 안에 만들었다.

벽과 천장은 은은한 편백 나무 향이 퍼지는 루바로, 바닥은 깔끔한 데코타일로 마감하니, 어느 명품 펜션 부럽지 않은 아늑한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니 굴착기로 앞마당 시멘트를 깨부술 때, 동네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훈수를 두셨고, 시어머니께서는 “남의 집에 왜 생돈을 쓰느냐”며 호통을 치셨다.

하지만 남편은 묵묵히 잔디를 깔고 방부목 데크를 설치했다. 마당 양 옆으로는 포도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오일장에서 사 온 채소 모종들로 뒤텃밭을 채워나갔다.


나의 소망과 남편의 정성으로 투박한 제주 돌집의 아우라를 살린 바닷가의 그림 같은 집이 완성되었다.

낮에는 햇살 가득한 개인과외 공부방으로 운영하지만,

밤에는 가족과 지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든 파티장’으로 변신한다.

상담 오신 학부모님들이 집 구경을 하며 “남편분이 인테리어 전문가세요?”라고 물으실 때면, 나의 어깨가 으쓱 서우봉만큼 솟는다. (서우봉:함덕에 있는 작은 오름이다.)

하이라이트는 막내 매형 퇴역 파티였다. 칠 남매 대가족에 강아지 두 마리까지, 무려 37명이 마당에서 모여 성대한 잔치를 벌였을 때, ‘집’ 다운 활기를 띠었다.


여름이면 불난디(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낭만도 있고, 텃밭에서 꼬리 자르고 도망치는 장쿨레비(도마뱀)를 보며 웃기도 하지만,

집 안으로 손바닥만 한 사마귀와 지네의 침입에 비명 지르며 기겁을 한다.


‘밥은 주지 말아도 쫓아내지는 말라’는 시어머니의 당부를 따랐더니,

대장 고양이들이 안거리를 중심으로 세 구역을 나눠,

돌담을 허물만큼 격한 세력타툼을 벌이면서 본인들만의 ‘삼국지’를 찍고 있다.


♬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노래 가사처럼, 우리 부부는 제주 돌집에 스위트 홈을 마련하고 사계절 내내 행복을 수학 중이다.


6-3 합성.jpg AFTER / ♬바닷가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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