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검질에도 꽃이 피고

by 몸냥필

도시에서 살 때 나는 자타공인 ‘식물 킬러’였다. 키우기 쉽다는 식물들도 내 손만 거치면 하나둘 빈 껍데기 화분만 남긴 채 세상을 떴다. 선인장조차 시들어버릴 땐 구질구질하게 환경 탓을 해댔다.

결정타는 여동생이 선물 받은 행운목이었다. 물만 잘 갈아주면 꽃이 피어 행운을 가져다준다기에 욕심껏 뺏어왔건만, 나는 물 주는 것도, 햇빛을 보여주는 것도 잊었다. 결국 행운목은 꽃은커녕 ‘사체’로 발견되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나중에 여동생이 보여준 똑같은 행운목 사진에는 하얀 꽃 두 송이가 만개해 있었다. 여동생에게 선물한 사람은 함께 사서 키웠다고 했다. 이파리 서너 개만 달려 있던 손바닥만 한 나무토막에서 찬란한 생명의 기운이 피어있었다. 역시 나는 뼛속까지 삭막한 도시 여자였던 모양이다.


그런 내가 제주로 시집와 텃밭을 맡게 될 줄이야!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도시 년 삼 년이면 농사꾼 흉내를 내게 되었다.


시집온 첫해, 나의 주적은 ‘잡초’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 잡초이고 무엇이 잔디인지 구분 못 하는 나의 ‘까막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복장을 갖추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내게 시어멍은 명쾌한 정의를 내려주셨다.


“우리가 싱긍게 아니면 다 ‘검질’ 이주게!”


제주어로 잡초는 ‘검질’, 김매는 것은 ‘검질 메다’ 혹은 ‘검질 하다’라고 한다.


인근에 사시는 시어멍은 텃밭을 가꿔주겠다며 나를 앞장 세워 신혼집에 오셨다.


나는 시어멍의 지시대로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몸빼바지에 팔토시, 장갑, 장화, 그리고 농촌의 상징이자 햇빛 차단의 끝판왕인 작업용 만능모자는 기본이었다.

여기에 전문 농사꾼의 필 수 아이템인 ‘작업방석’까지 장착했다. 밴드 끈을 양다리에 끼워 엉덩이에 달고 다니는 이 이동식 의자는 촌 아낙의 편리성과 치명적인 뒤태를 뽐내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제주에서 골괭이라 부르는 호미를 손에 쥐었다.

이 완벽한 농촌 아낙 풀세트는 시어머니께서 가장 양호한 것으로 골라 물려주신 귀중한 ‘유산 1호’가 되었다.






마당에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건 죄다 검질이라 생각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쥐어뜯었다.


“나 오늘 검질 좀 했다!” 며 남편에게 자랑했더니 돌아온 건 타박뿐이었다.


“잎사귀만 뜯어놓고 무슨 검질이야. 뿌리를 뽑아야지!”


오기가 생겼다. 다음 날부터 골괭이(호미)로 땅을 박박 파내는 ‘검질 파괴자’로 변신했다.

이번엔 남편이 기겁하며 놀렸다.


“무슨 두더지가 파먹고 갔어? 이렇게 구멍을 숭숭 내놓으면 검질이 두 배로 퍼진다고!”


뽑아 놓은 검질들을 남편에게 자랑하려고 테크 위에 늘어놓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잡초’라고 뭉뚱그려 버리기엔 녀석들이 너무 개성 있고 예뻤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름도 고운 ‘개미자리’이니 ‘광대풀’이니 하는 예쁜 이름들을 가진 풀들이었다. 이렇게 이름도 고운 아이들을 무참히 뽑아버려야 하다니, 농사의 세계도 참으로 냉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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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뽑아낸 검질 중 예쁜 것들을 골라 화단 한 귀퉁이에 몰래 다시 심어놓았다. 물론 금세 남편에게 걸려 혼쭐이 났다.


“하다 하다 이제 검질을 심냐?”

“여보가 꽃은 못 심게 하니까 그렇지! 이름 찾다 보다 보니까, 얘네들도 꽃이 핀단 말이야.”


식물 킬러였던 내가 이제는 잡초가 가여워 다시 심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전히 서툴고 엉뚱한 짓으로 남편의 뒷목을 수시로 잡게 만들지만, 뭐 어떤가.

빌딩 숲 사이의 자동차 매연보다 흙냄새와 뜨거운 햇살 속에서 지금의 내가 훨씬 마음에 드는걸.

도시 여자에서 함덕리 촌 아낙으로 변신한 나의 이 무모하고도 싱그러운 첫출발. 어쩌면 이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가장 유쾌한 도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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