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와 한동네에서 신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려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대한민국 며느리라면 누구나 ‘시’ 자만 들어가도 남을 대할 때보다 괜스레 마음이 위축되며 촉수가 예민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어렵다는 생각이 덜했다. 내 앞에 계신 시어머니가 자꾸만 나의 '외할머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두 살, 세 살 터울의 자식 셋을 독박 육아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엄마가 첫째인 나만을 외가에 거의 맡겨두다시피 했다. 덕분에 나는 외가에서 첫 손주로서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여섯 살에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외할머니는 나의 첫 스승이었다. 뜻도 모르면서 “청산리 벽계수야~”를 읊조리고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노래하던 꼬마.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내가 읊조리던 것이 황진이의 시조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1927년생인 외할머니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근현대사였다. 충청도 조씨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나 갓난아기 때 생모와 함께 쫓겨났다. 생모의 재가로 새아버지의 성을 따라 36년에야 출생신고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소학교에서 우등생으로 보조교사까지 지냈던 총명한 소녀. 하지만 중매로 스무 살에 시집간 연하 남편은 무능했고 바람기까지 다분했다. 시아버지가 독립투사셨기에 생부가 일본순사였던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고. 마흔에 과부가 되어 억척같이 자식을 키워낸 외할머니가 97세의 일기로 돌아가시며 남긴 이야기들은 대하소설 ‘토지’만큼이나 아프고도 찬란했다.
그런데 제주에서 만난 시어머니의 삶이 할머니의 생애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1933년생 제주 한 씨 가문의 셋째 딸.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보란 듯이 첩을 들여 한동네에서 새살림을 차렸고, 여섯 살에 생모를 잃은 후로는 첩이 새어머니가 되어 들어왔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공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이복남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남동생들이 자라자 식모살이로 내몰렸던 소녀.
중매로 만난 연하 남편은 심성은 고왔으나 노름을 좋아했다. 결국 시어머니도 마흔여덟에 과부가 되어 일곱 자녀를 홀로 키워내셨다. 시어머니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제주 여성의 삶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을 끝낸 드라마만큼이나 가슴 먹먹한 울림이 있었다.
남편은 이 드라마를 재 시청할 정도로 좋아한다. 어멍을 보는 것 같다며 몰래 눈가의 이슬을 찍어내기도 했다.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시어머니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사실이었다. 마흔다섯 평생 내 주변에서 본 적 없는 일이라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글자 대신 삶의 지혜가 넘치는 분이셨다. 셈이 누구보다 빠르셨고, 우리 집 텃밭까지 손수 일궈주시며 쪽파, 마늘, 고구마 심는 법을 전수해 주시는 '농사 스승'이셨다.
“설은 애기야. 그것도 모르샤?”
마흔다섯의 나를 시어머니는 설은 애기라 부르셨다. 여기서 ‘설다’는 것은 제주 방언으로 음식이 덜 익었거나 사람이 미숙하다는 뜻이다. 밥 짓는 법 하나, 흙 만지는 법 하나 서툰 며느리를 보며 시어머니는 늘 혀를 차면서도 다정하게 가르침을 주셨다.
마흔다섯에 애기로 불리는 것도 모자라 미숙한 풋내기라니.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나쁘지 않았다. 제주 삶에 대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시어머니의 시간은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기세등등하던 여장부의 모습은 사라지고 혼자 하실 수 있는 일이 하나둘 줄어들었다.
어느 날, 성인용 기저귀 착용을 완강히 거부하시던 시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내가 애기가? 늙은 애기 맞네.”
시어머니는 비로소 세월의 순리를 받아들이고 계셨다. 그 한마디에는 한평생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살아온 여자의 서글픔과 달관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올해 아흔셋의 시어머니께서 부디 이 소풍 같은 생의 끝자락을 그저 평온한 꿈결처럼 보내시길 간절히 바란다.
시어머니의 인생 학교에서 여전히 ‘설은 애기’인 나는, 이제 ‘늙은 애기’가 된 시어머니의 마른 손을 잡고 조금 더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고 있다. 덜 익은 나와 너무 익어 작아진 시어머니가 제주 함덕에서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