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 9일. 지난주 금요일에 시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시집을 와보니 설과 추석은 기본이고, 일 년에 제사가 무려 네 번이나 더 있었다. 그나마 내가 시집오기 전에 합제(여러 제사를 한날에 모심)와 당일제(돌아가신 기일에 맞춰 저녁에 지내는 제사)로, 추세를 따르면서 많이 간소화되었다지만, 시아버지부터 증조부모님, 작은 조부님네 일가족까지 총 12위(位)를 모신다.
나는 나름 제사 ‘경력직’이다. 어릴 적부터 나의 조부와 외조부 제사를 지켜보며 거들었기 때문이다. 조부 제사는 경상도식으로 종류별 생선이 5종 올라가는 반면, 외조부 제사는 충청도식으로 소고기 산적을 중심으로 한 육고기가 올라갔다. 그리고는 밥과 국, 과일, 전, 떡, 밤, 대추, 북어 포 등을 기본으로 하며 대동소이한 차이로 차려졌다. 그렇기에 내게 제사가 낯선 문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제주도식 제사에서 나의 일반적인 상식이 무너졌다.
일단 제주는 ‘제사’라는 단어보다 ‘식게(식개 또는 시께)’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제주 식게상에서 가장 먼저 나를 ‘멘붕’에 빠뜨린 건 떡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카스텔라와 롤 케이크였다. 그 옆엔 단팥빵, 소보로빵, 심지어 꽈배기 도넛이 곁들여 있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조상님이 갑자기 서구 입맛으로 바뀌셨나?’ 싶었지만, 사연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논농사가 힘든 제주에선 쌀이 워낙 귀했기에, 귀한 쌀떡 대신 밀가루, 보리가루로 만든 빵을 올리던 것이 풍습으로 굳어진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잔기지떡 같은 떡도 함께 올라오지만, 여전히 제주의 조상님들은 후식으로 빵을 즐기시는 힙한 분들이시다. ^^;
섬이니까 생선이 풍성하게 올라갈 거란 나의 예상도 빗나갔다. 제주의 식게상엔 오직 ‘옥돔’ 구이 딱 한 마리만 올라간다. 대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손가락 굵기로 썰어 꼬지에 끼워 굽는데, 여기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숫자가 바로 ‘7’이다.
한 번은 소고기 꼬지적을 굽다가 한 토막이 쏙 빠지길래 대수롭지 않게 떼어내고 구웠더니, 대번에 핀잔이 날아왔다.
“한 꼬지에 무조건 7개를 맞춰야 한다!”
왜 하필 7개인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제사상의 홀수 법칙이 제주에선 ‘럭키 세븐’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여기에 뿔소라(구젱이), 전복, 문어까지 꼬지에 끼워 올리고 나면 드디어 제주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제주도식 제상의 메인음식이 완성된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제삿밥은 솔직히 맛이 없었다. 귀신 쫓는 양념(소금, 마늘, 고추, 파)을 쓰지 않아 밍밍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젯밥 드시러 왔다가 매운 양념 보고 도망가시면 어쩔 거냐!”라던 외할머니의 호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제주의 식게 음식은 다르다. 간도 딱 맞고 맛도 좋다.
북한에 ‘이밥에 고깃국’이 있다면 제주엔 ‘곤밥에 몸국’이 있다. 제주어로 ‘곤밥’은 고운 밥, 즉 하얀 쌀밥을 뜻한다. 평소엔 구경도 못 하던 이 하얀 쌀밥을 제사 때나 먹을 수 있었기에, 남편은 어린 시절 오로지 제삿날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더 특이한 건 제상에 ‘미역국’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탄생과 산후조리의 상징인 미역국이 죽음을 기리는 상에 올라가는 것이 처음엔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제주의 제사를 지내며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제주 식게의 하이라이트는 ‘보따리 전’이다. 고사리와 실파를 깔고 얇은 달걀지단을 부쳐 내는데, 지단은 ‘보따리’를, 고사리와 파는 ‘어깨끈’을 상징한다. 제사가 끝나고 조상님들이 돌아갈 때 이 보따리에 제수 음식을 싸서 가시라는 의미란다. 실제로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는 일가친척들에게 제사 지낸 음식들을 나눠 싸줬다.
어쩌면 제주의 식게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인 동시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일가친척들을 불러 모아 배불리 먹이는 ‘마을 잔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상님이 싫어할까 봐 양념을 빼는 대신, 산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간을 하고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아닐까.
제주의 제수(祭需)는 조상의 영혼을 위한 차림이라기보다, 살아있는 이들을 다독이고 먹이려는 뜨거운 마음이었던 셈이다. 하얀 ‘곤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조상님들은 당신의 자손들이 음식을 넉넉히 싸가는 그 보따리의 무게만큼, 흐뭇한 배부름을 느끼고 계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