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남자, 줄여서 ‘제남’. 이들에 대해 입을 떼기 전, 우선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67만 도민 중 절반이 남성이라지만, 토박이는 그중 삼분의 일도 안 되기에 이 글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제남의 특징을 얘기 나눌 때, 나도 모르게 내 남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동석했던 이들도 손뼉 치며 크게 웃었다. 제주 남자 하나쯤 떠올리면 격하게 공감할 ‘제남’ 이야기, 그리고 내 남자에 대한 고백이다.
일단, 제남은 대체로 체구가 아담하다. 요즘 MZ세대들은 훤칠하지만, 윗세대로 갈수록 이른바 ‘한 입 거리’ 피지컬이 많다.
40대 초반의 한 육지 지인(키 178cm, 몸무게 100kg의 거구)은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제남과 육남(육지 남자)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본인도 육남의 평균값은 아니면서, "제남들은 다 내 턱밑에 있더라"라며 으스대는 꼴이라니. 하지만 그 작고 단단한 체구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결과다.
제남은 피부가 까무잡잡하다. 작렬하는 섬의 햇볕과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그을린 얼굴은 언뜻 보면 동남아시아 사람 같기도 하고, 몽골 사람을 닮기도 했다. 제주가 한반도보다 바다의 영향을 깊게 받고, 몽골의 직접 지배를 100년 넘게 받은 역사가 그들의 얼굴에 겹겹이 스며든 탓이리라. 제남의 얼굴엔 바닷길의 섬세한 결뿐 아니라 초원의 강인함까지 서려 있다.
제남의 성격은 ‘무뚝뚝한 마초’ 다. 매너 좋고 사탕발림 잘하는 서울 남자들과는 결이 다르다. 제남은 일단 버럭 대며 곧잘 우긴다. 제주가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는 이유도 여기쯤 있을 것이다. 관광의 역사가 채 오십 년도 되지 않은 섬에서 사람들은 서비스보다 생존에 익숙했다. 그러니 서비스 정신?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속정이 깊다 못해 절절하다.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가 어려울 뿐, 한 번 내 편이라 생각하면 절대 등을 돌리지 않는 ‘괸당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마을 일, 모교 일, 동창 일이라면 제 일처럼 나서고 보는 이 남자들.
“어떵하리, 괸당 일인디 나가 가사주.”
(어쩌겠니, 친척 일인데 내가 가야지)
이 한마디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뼈에 새겨진 유대감이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제남들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는 바로 ‘내기 놀이’다. 즐길 거리가 없던 시절, 집집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노름으로 밭이나 과수원을 날려 먹었다는 전설 같은 사연 하나쯤은 기본 옵션이다.
그 DNA는 어디 안 간다. 장례식장의 ‘일포(발인 전날)’ 밤샘은 물론, 명절 전날에도 노름판은 벌어진다. 요즘은 그 무대가 스크린 골프장으로 옮겨갔다. 제주에 카페만큼이나 스크린 골프장이 많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도 커피 대신 내기 골프로 ‘제남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나는 표현은 서툴러도 속 깊고 따뜻한 제주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소개팅 날, 친구 부부의 등쌀에 떠밀려 나온 그는 ‘1년 살기 하러 온 육지 여자’인 나를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애프터 신청조차 본인이 직접 못 해서 친구 부부가 대신 나섰을 정도로 숫기가 없던 남자. 결국 내가 먼저 반했고, 참다못한 내가 먼저 대시했으며, 사랑 고백도 내가 먼저 선수 쳤다.
“자기야, 사랑해.”
뜨거운 내 고백에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난, 어멍 소랑허멘!”
(난, 우리 엄마 사랑해.)
당시엔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 그의 대답이 쑥스러워서 하는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웬걸, 결혼하고 보니 그는 정말로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찐’ 효자였다.
그의 사랑 순위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1순위는 어멍, 2순위는 나, 그리고 그다음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