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부신랑 부신부

by 몸냥필


결혼을 앞두고 제주에서 알게 된 M이 비장하게 말했다.


“언니, 내가 부신부 해줄께.”


그저 들러리 서준다는 말이겠거니 가볍게 고맙다 답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제주에서는 신랑 신부 들러리를 ‘부신랑’, ‘부신부’라 부른다. 이들은 단순히 신랑 신부 옆에서 미소짓는 친분과시용 들러리가 아니었다.

제주만의 독특한 혼례 풍습을 몸소 수행하는, 일종의 ‘웨딩 특수 비서진’이자 ‘인간 금고’였다.


결혼식 준비 과정은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오십오일 만에 일사천리로 치러낸 결혼이라, 차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식 전날, 예랑이가 식장 근처 독채 펜션을 잡아 술과 음식을 잔뜩 채워놨다고 했다. 신랑 친구들이 모여 밤새 흥겹게 놀 계획이라나.

나도 육지에서 결혼식에 여러 번 다녀봤다.

신혼부부 친구들만 모여 떠들썩하게 즐기는 뒷풀이 피로연에 끌려간 적도 있고, 이제는 거의 사라진 ‘함들어오는 날’에 신부 친구로 함진아비와 실랑이를 벌인 추억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결혼식 뒷풀이를 전날 앞서 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또한 제주 결혼의 풍속이었다.



결혼식 당일, 식장으로 향하는 길부터 남달랐다. 웨딩샵에서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꽃으로 장식한 벤츠 럭셔리 세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신랑 신부가 타는 웨딩카를 ‘1호차’라고 불렀다. 다른 두 대의 차량이 1호차를 호위했다. 한 차에는 부신랑 부신부가, 다른 한 차에는 공항에서 막 도착한 친정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1호차 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와 주례자를 식장까지 모시는 차량 수배와 운전할 친구 배정 등을 부신랑이 맡아 진두지휘하는 것이라 했다.


꽃으로 단장한 ‘1호차’를 중심으로 차량들이 움직였다. 에스코트를 받으며 예식장에 입성하니, 이 또한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제주식 결혼식장에서는 접수대와 식권이 없었다. 부페 연회장입구에서 스티커를 붙여 인원수만 파악했다.

육지의 결혼식이 서너시간 만에 해치우는 ‘속전속결형’이라면, 제주는 그야말로 ‘마라톤형’이었다.

우리 예식은 오전 10시에 시작했는데 연회장은 무려 오후 6시까지 열려 있었다. 육지처럼 ‘앞뒤 타임’에 쫓겨 밥을 마시는 풍경은 상상 할 수 없다. 장장 8시간 동안, 두 끼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관례를 처음엔 잘 몰랐다. 예식이 우리밖에 없었고, 날짜도 비수기였으며, 코로나가 막 터진 어수선한 시국이라 리조트가 특별히 배려해준 줄로만 착각했다. 알고보니, 이게 바로 제주식 결혼이었다.



‘부신랑’, ‘부신부’, ‘1호차’ 만큼 생소한 단어가 ‘겹부조’와 ‘3일 잔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겹부조’라는 정말 제주만의 독특한 상조문화다. 하객이 신랑뿐 아니라 친분이 있는 신랑의 부모, 형제에게도 각각 부조를 하는 방식이다. 이때 부신랑과 부신부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니며 실시간으로 신랑 신부의 부조금을 수거하고, 답례로 지역 상품권을 척척 건네준다. 예식 내내 돈 가방을 사수하며 온갖 고생을 도맡으니, 오죽하면 부신랑과 부신부가 눈이 맞아 다음 결혼의 주인공이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겠는가.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내 체력은 이미 바닥났고, 당장이라도 객실로 올라가 대자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나도 이런데 대체 3일 잔치를 어떻게 치뤘다 말인지.


“막내 똘(딸)까지 사흘잔치로 팔았주게. "


시어머니는 여섯 자식을 모두 ‘3일잔치’로 치러내셨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의 결혼식은 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했다. 첫날은 돼지 잡는 날, 둘째 날은 예식장에 못 오는 지인들을 위한 ‘가문 잔치’, 셋째 날이 비로소 본식이었다.

육지 여자였던 내게는 하루치 예식도 이토록 고된데, 3일을 잔치 치르며 사셨을 제주 어머니들의 내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제주인들의 강인함과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응축된 결정체가 부신부와 부신랑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든든한 호위 덕분에 나는 무사히 ‘제주 며느리’로서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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