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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Aug 17. 2023

영화 오펜하이머와 히로시마

오펜하이머는 인류의 프로메테우스인가


1. 히로시마의 원폭돔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땅에는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한국인 희생자들을 포함한 각국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이 있다. 원폭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듯 가까스로 골조만 남겨진 채 위태롭게 역사를 이겨내고 있는 앙상한 건물을 보는 것 만으로 누구나 측은지심에 휩싸일 것이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피해를 입은 무고하고도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에 대해,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애도를 표했다.


반대로 일본에 살면서 원폭 피해의 역사에 대한 서술을 마주할 때면 어딘가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원폭의 피해는 마음 아프지만 전쟁의 가해자이기도 한 나라, 당신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음을 후대에 조금 더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전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2. 미국 영웅주의 영화들을 코웃음 치며 볼 때는 있지만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다. 뻔하고 귀엽지 않은가. 기승기승전결식의 통쾌한 결말은 아들내미들의 칼싸움 같고 물총싸움 같아서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하다.


3. 이 영화가 그런 전형적인 미국만세 영화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듯 싶었다. 

원폭의 발명이 미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불러오고 세계의 질서를 재편성했다. 한국은 오히려 그 수혜국가라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이 영화가 불편했다.

당시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을 논의하고 있던 일본땅에 맨하탄 프로젝트가 꼭 필요했을까?

만약에, 개발에 성공한 핵을 일본땅에서 실험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 끔찍하고도 슬픈 발명품은 지구 어디에서 버섯 구름을 피우며 희생자를 찾았을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선으로도 악으로도 그리지 않았다. 대신 학자로서의 그의 순수한 열정과 고뇌, 윤리의 관점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내면의 갈등을 탄탄한 플롯과 거장다운 시선으로 표현함으로 그를 변호하고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3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4. 만약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수상이 본인의 직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윤리적인 고뇌를 안고 있다 한들 한국인들이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5. 오펜하이머는 인류의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그의 발명품은 인류의 가장 미숙한 역사이며 핵 프로젝트의 선두자인 그는 역사상 최고의 ‘나이스한 개새끼‘일 뿐이다.


+ 유네스코 선정위원회는 1996년 히로시마 원폭돔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더했다고 한다. ’인간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히로시마 원폭 돔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영원한 인류 평화를 추구한다는 서약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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