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레이 첸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참 좋아한다.
어느 정도 단정하게 정제된 이미지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 클래식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늘 소통과 새로운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항상 여유와 유머가 넘쳐나는데, 그런 파워 E성향의 그를 그저 과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단 한 번의 공연 직관을 추천한다.
무대 위의 그는 화려하면서도 자유롭다. 솔리스트만이 내뿜을 수 있는 아우라로 무대를 완벽히 장악하는데 한결같이 밝고 유쾌하다. 재능 있는 자는 아름답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저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런 그를 마주한 밤이었다.
하이페츠로부터 이어지는 그의 1714년 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은 은빛 실크처럼 우아하면서 단단하고 어딘가 허스키한 듯 강렬했다. 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을 꼭 직접 들어보고 싶었는데, 과분했다.
베토벤의 8번 소나타는 순수했다. 가끔 레이 첸의 연주는 모차르트는 물론 베토벤조차 장난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 날이 그러했다.
두 번째 곡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은 내가 가장 기대했던 곡이기도 했다. 그의 스트라빈스키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웠고, 때로는 음흉했다. 베토벤을 들을 때는 연주자가 보였는데 스트라빈스키를 들을 때는 130년 전의 천재 작곡가가 보인다. 두 천재의 영혼이 시공을 넘어 엉켜있는 이 시간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2부의 바흐는.. 눈물이 났다. 코로나 전 산토리홀에서도 똑같이 레이 첸이 연주하는 바흐를 듣고 울었던 것 같은데. (재미있는 것은 개취이지만 바흐에 있어서만큼은 레이 첸이 최선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희한하게도 들으면 눈물이 난다.)
헝가리 무곡과 치고이네르바이젠이 끝나고 쏟아지는 기립박수 속에서 탱고와 재즈를 넘나드는 네 곡의 앙코르는 자유로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내 후세에는 저 레이 첸의 왼손 손가락으로 태어나도 좋으리라 싶었다. 아니면 차라리 그가 신은 반짝이는 루브탱 슈즈라도 되겠다.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도 연습이 싫었다. 그 지루한 연습 과정과 무대와 관중 앞에 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저 무대에 서 있는 음악가들-특히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나는 너무나도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인회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서 내려온 후의 그를 기다렸다. 흰 니트와 청바지와 흰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시종 밝고 따뜻했다.
신동에서 영재를 지나, 신예에서 중견 바이올리니스트를 넘어 젊은 거장으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그를, 나는 여전히 열렬히 응원한다!
#레이첸 #엘리의퍼니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