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대로 걸어 나왔다.
임윤찬이다. 미디어에서만 보던 바로 그 열여덟의 천재소년.
더벅머리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
엄마 팬들 눈에는 아가아가한 얼굴.
기번스라는 비교적 낯선 바로크 작곡가의 곡에 이어 두 번째 곡은 바흐의 신포니아. 신포니아는 순서를 조금 변형해서 연주했다. 악장마다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포근하게. 신포니아가 이토록 커다란 곡이었나.
후반은 리스트 두 개의 전설, 그리고 오늘의 대미를 장식한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 이 곡을 위해 임윤찬은 단테의 신곡을 거의 외울 정도로 읽었다는데. 말해 무엇할까, 그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었다. 눈이 손을 못 따라가는 신들린 연주. 귀에 들리는 음악이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다. 묘기처럼 움직이는 건반 위의 열 손가락에 나뿐 아닌 다른 관객들도 숨을 멈추었다.
단테가 말한 지옥이 바로 이런 곳일까. 로댕의 지옥문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는 저 가녀린 몸으로 스크린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지옥의 파워를 뿜어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고 이천여 일본 관객은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곡이 끝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클래식 관객은 기립박수에 후한 편은 아니다)
360도를 돌며 엉거주춤 한 자세로 머리가 무릎까지 닿을 듯이 정중한 인사를 몇 번. 앙코르는 바흐의 시칠리아노 한곡을 남기고 그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객석의 불이 켜진 후에도 한동안 기립박수는 이어졌다.
언론의 인터뷰를 보면 말하는 것은 마치 여든 할아버지가 그 속에 들어앉은 것만 같다. 하지만 음악에 관해서만은 분명한 자신만의 철학과 순수하고 선량한 이상을 갖고 있는 소년. 그래서 사람들은 이토록 임윤찬에게 열광하는 가보다.
그가 이제 겨우 열여덟이라 다행이다. 별처럼 많은 날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곡들과 멋진 연주를 통해 우리에게 음악의 행복과 기쁨을 전해줄까.
세계 음악계는 그를 통해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까.
그저 묵묵히 그의 앞길을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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