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보다는 쓰는 게 좋다. 글 쓰는 게 고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글을 안 쓴 체 하루이틀, 아니 일주일, 이주일 보내다 보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불쑥, 아 글쎄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불쑥, 고개를 쳐든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럴 때 써야 글이 잘 써진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별의별 이유로 쓰지 못한다. 미뤄 둔 집안일이 많아서, 오랜만에 운동을 해야 해서, Y랑 같이 피의 게임을 봐야 해서, 오늘따라 날씨가 추워서, 사놓고 안 한 게임이 마음에 걸려서 등. 이 밖에도 글을 못 쓸 이유는 많다. 나는 글을 못 쓸 이유를 신용카드 명세서의 목록보다도 길게 댈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게 얼마냐 어려운 일인지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천성이 예민해서 글을 쓸 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의자의 높이는 적당해야 하고 책상은 깔끔해야 한다. 노트북 옆에는 커피가 있어야 하며, 글을 쓰다가 쉬고 싶을 때 읽을 책이 있어야 한다. 커피는 맛없어도 되지만 양이 많아야 한다.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에세이나 대중철학책 정도가 적당하다. 글 쓸 때는 소설을 못 읽겠단 말이지. 소설을 읽다 보면 금방 피곤해져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안 읽는 경우가 더 많지만서도.
위에서 말한 것에 더해 주변도 조용해야 한다. 적당한 소음, 이를테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나 이국의 언어로 된 음악은 괜찮다. 그렇지만 옆 테이블의 대화는 신경 쓰인다. 평소에 남의 말은 잘 듣지도 않으면서 글 쓸 때는 왜 듣기 싫어도 들리는지.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도 달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연애담을 듣고 있으면 마치 불륜 정황을 엿듣는 흥신소 직원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 글쎄, 그렇게 재미있는 얘기는 나 없는 데서 하라고. 거슬린단 말이야. 속으로 짜증 내면서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만다. 그러는 동안 글은 당연히 한 글자도 못 쓴다.
이런 내 성격 때문에 Y도 내 눈치를 살핀다. 기분 좋게 온 카페에서 내가 되려 스트레스만 받을까 봐. 그래서 요즘은 자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평이 안 맞는 책상과 옆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거슬려도 어떻게든 쓴다. 나름의 방법도 찾았다. 초고를 완성하기 전까지 백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는 것. 이렇게라도 해야 나는 글을 완성할 수 있고 Y에게도 미안하지 않을 수 있다. Y가 내 눈치를 보는 건 싫으니까. 무엇보다 싫으니까. 글이 안 써지는 것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