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의 불완벽함

by 밥 짓는 타자기

글을 잘 안 쓰게 되는 건 인풋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창 글을 많이 쓸 때, 그러니까 대학생 시절에는 읽기도 많이 읽었다. 주로 과제 때문에 읽긴 했지만 억지로라도 읽으니 영감이 잘 떠오르긴 했다. SF 소설을 읽으면 나도 SF 소설을 쓰고 싶어졌고 시를 읽으면 시를 쓰고 싶어졌다. 아 물론 좋은 작품에 한해서 말이다. 개똥 같은 걸 읽으면 아무런 동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음식 사진이나 본다고 식욕이 일지 않는 것과 같다.


글을 잘 쓰려면 질보단 양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꽤 많이. 어느 작법서를 보더라도 비슷한 얘길 하더라니까.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한 문장도 대충 쓰기가 어렵다. 아무렇게나 한 문장을 쓰고 나면 곧바로 백스페이스바를 누르게 된다. 마음에 안 들고 재미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는 거다. 여기에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 게 도움이 됐다. 어떤 규칙이냐면, 일단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그 문장은 절대로 수정하지 않는 것이다. 크흐흐. 이렇게 하니 어느 정도 빨리 쓸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도 이 방법을 썼다면 학점이 조금은 더 올라갔을 텐데. 늘 시간이 부족해 과제를 할 때 애먹곤 했으니까.


작가가 되려면 뭐라도 써야 한다. 개똥 같은 글이라도.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보단 일단 많이 써 놓고 다듬어 가는 게 효율이 좋다. 완벽한 글 같은 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완벽한 글이란 게 있다면 그 글을 제외한 나머지 글은 존재할 가치가 없을 거다. 그 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면 되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글이든 불완전한 법이고, 그래서 우리가 다른 글을 찾아서 읽게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예전부터 했던 생각은 아니고, 방금 떠올린 생각이다. 그래도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사람도 완벽하면 쉽게 질리는 법이다. 완벽한 사람에게는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내가 더 보탤 게 없다. 그런 사람은 재미도 없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궁금증을 유발한다. 사람을 사랑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불완전하기에 싸우고, 껴안고, 기분을 풀어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 한 겨울 전기장판에 눕는 순간이 행복한 건 바깥의 공기가 차갑기 때문이다. 전기장판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장강명 작가의 『표백』인데,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세연'은 이 세상이 완벽하다고 말한다. 너무 완벽한 나머지 이룰 수 있는 게 없는 세상이라고. 멋지고 위대한 일은 이미 옛 세대가 다 이루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는 그런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자살하게 되는데, 안 그래도 삐딱하던 당시의 나는 그 죽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허무주의에 빠졌다고나 할까. 세연의 말처럼 정말로 세상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란 걸 안다. 세상이 완벽하다니. 너무 선진국의 중산층스러운 생각이 아닌가. 이봐, 세연. 차드 난민캠프의 난민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 커다란 불행을 눈앞에 두고서도 할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냔 말이야.


세상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섣불리 세상이 완벽하다 말해선 안 된다. 완벽하다고 하는 순간 독재와 전쟁, 가난을 못 본 척하는 게 된다. 완벽한 글이 없듯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세상도 없다. 완벽함은 우리가 나아갈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그 사실이 내가 다음 글을 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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