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관하여

by 밥 짓는 타자기

시간이 붕 떠서 무작정 카페에 왔다가 노트북도 있겠다 글이나 쓰기로 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글을 쓴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글을 안 써도 돈이 안 생기는 건 똑같으니까. 글을 쓰기로 하면 항상 ‘이번엔 뭘 쓰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쓰고 싶은 주제가 있었다. 나는 겨울에 관해 쓰기로 했다.


겨울. 어릴 때는 겨울을 좋아했다. 크리스마스가 있고 눈이 있고 세뱃돈이 있으니까. 지금은 예전만큼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싫어한다. 사계절 중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겨울이다. 겨울을 좋아하게 한 원인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예전처럼 두근거리지 않을뿐더러 세뱃돈도 안 받는다. 눈은 여전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잘 안 내린다. (어릴 내는 겨울마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반면 싫어할 이유는 많다. 옷을 껴입어야 해서 활동하기 불편하고 난방비는 많이 나온다. 피부는 건조해지고 해는 너무 일찍 진다. 해가 일찍 진다는 점은 특히 내게 치명적이다. 나는 해가 지면 행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낮의 길이와 내 행동력의 상관관계는 Y가 오래전부터 연구하던 주제다. 참고로 Y는 여자친구다.)


겨울이 싫은 또 다른 이유는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다. 내게 겨울은 나를 정산하는 계절이다. 잘한 일은 뭐가 있고 못 한 일은 뭐가 있는지 따지는 계절이다. 나는 내게 평가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조금 울적해진다. 또 한 해를 망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걸 보고 홀리데이 블루스라고 한다지. 용어가 따로 있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SNS만 보면 다들 송년회니 크리스마스니 하며 즐거워 보이던데 말이야. 아무튼.


겨울에 관해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건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한 사람에 관한 기억이다. 나만큼이나 추위를 많이 탔고, 나만큼이나 센티했던 사람. 남편을 사랑하냐는 내 물음에 늘 ‘아니’라고 대답했던 사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계절도 겨울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겨울마다 그 사람의 기일이 다가오는 게 싫다. 그 사람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사람이 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잊고 싶다. 나는 그 사람이 조금 부담스럽다. 나는 마치 놀기 위해 숙제를 외면하는 어린 학생이 된 것만 같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겨울이 일 년 중 두세 달에 불과하다는 거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찾을 것이다. 또 한동안 그 사람을 잊고 지낼 것이고, 요즘 어떻냐는 의사의 물음에 괜찮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무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시간은 지나갈 것이며, 나는 다시 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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