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번 깨진 접시

by 고스라히


어느새 엄마를 닮아있는 나를 마주할때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였다.

저럴꺼면 이혼하지.. 대체 왜 주구장창 싸우면서도 저러고 살까?

한심한 시선으로 엄마를 보았다.

나는 자식에게 매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게 낫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 환경속에서 배울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알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사람을 놓치않고 싸우면서라도 버티고 있다.

내몸 하나 몸조리하기도 벅찬데, 이 가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불안하고 휘몰아치는 저사람을 바라보며 버티고 있다.

이게 잘하는 걸까? 라는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시간을 보냈다.


부부란게 도대체 뭘까?


한번 깨진 접시는 이어붙이기도 힘든다는데..

우리가 다시 살수는 있는걸까.


산후조리원에 있을때가 생각이 난다.

매번 끼니때마다 식당에 올라가 다른 산모들과 밥을 먹어야했는데

매일 내가 밥을 해대다가 누군가가 해준 음식이 반가워야할 그때인데,

예쁘게 밥을 가져와 예쁜 식탁에 앉아서 한술 뜨지도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두가 아이를 낳고,

똑같은 분홍색 산모옷을 입고,

다들 앉아서 태어난 아기에 대해 떠들고 있는데

나는 정말 철저히 혼자된 기분이였다.


철저하게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이와 나인거 같았다.


호르몬의 변화때문인지 몰라도

그 이질적이고 씁쓸했던 기분은 그당시 내눈앞에 보이던 병원밖 풍경과 함께

사진처럼 찍혀 뇌리에 박혔다.


새로운 삶의 시작을 기대할 그때,

나는 아주 기묘하게 되어버린 우리 가족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마주쳐야할지 막막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때 단단히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던 일은

출산하고나면 무조건 나의 회복만 위해서 노력할꺼라는 것이였다.

50일 지나 운동하기

예쁜 옷 사입기

카페에 가서 혼자 시간 보내기 등등

나를 위한 자잘한 계획들을 적어놓았다.

그건, 많은 일을 겪고 온 나를 위한 선물같은 일상이였다.


그리고 또 하나.

갓태어난 신생아 둘째를 아빠에게 일임하는 것이였다.

첫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숙한 엄마라

무조건 엄마가 케어, 앵 울기만해도 즉각 대응, 모든게 내 몫이라 생각했고

내 몸사리지 못하고 아이옆에서 자야한다는 생각에 바닥에서 잤었다.


그 경험으로

둘째는 전적으로 남편에게 밀어넣었다.

나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첫째핑계로 남편에게 둘째와 함께 자라고 부탁했고

난 첫째와 따로 잤다.

밤새 남편의 케어부족으로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나는 가지않았다.


몇일이 지나자 첫째때는 아이가 울어대도 못듣고 잠만 자던 남편은

화이트소음을 틀고 밤새수유에 필요한 보온병을 서너개 이불옆에 대기해놓고

육아베테랑처럼 머리를 써가며 본인도 살 방법을 찼아댔다.


나름대로 생각한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나의 몸 회복이였고

둘째는, 그렇게 딸딸딸 노래를 부르던 남편과 둘째아이의 친밀한 관계조성이였고

셋째는, 그리하여 니가 무슨짓을 했는지 좀 느껴봐라 하는 마음이였다.


사랑하는 존재가 예쁘면 예쁠수록 양심에 가책이라도 느껴라 하는 마음.


후에 들었는데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아 잘 자고있을줄 알았던 둘째는

아침마다 자고있는 아빠에게 기어가

침을 무수히 흘리면서 아빠 눈 까뒤집기, 콧구멍에 손가락 집어넣기,

입술을 벌려 이빨을 만지기, 귀에 손가락 넣어보기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아빠를 탐색했던거 같다.


그런 시간이 쌓여서 그런지

뱃속에 있을때 그렇게 위기를 가져다준 아빠를 이상하리만큼 좋아한다.

맹목적인 아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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