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번아웃

by 고스라히


바람 난 것도 기가 막힌 일인데

번아웃이 왔다고?


아니, 반대로.


번아웃이 온 인간이 바람을 어떻게 피우지?

이게 말이 되나?


앞뒤가 맞지않는 이 상황은, 내가 갑작스럽게 맞닥드린 상황과 같았다.

앞.뒤가 없다. 맥락이 없어.

딱히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아무 큰일도 없었는데 둘째가 생겨서 좋다고 방실방실 웃었던 그였는데

그 기다리는 딸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두달전.


점점 회사에서 회식하는 일이 많아지고,

작업실로 바로 퇴근한다는 말이 많아지고,

전화를 안받는 일이 잦아지고,

집에와도 별말 없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원래도 말이 없고 표정이 없는 사람이였는데

나는 만삭에 첫째 사내아이까지 간수하느라 내살길도 바빠서

그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저 큰아이의 에너지에 내가 너무 버거우니

시간을 내어 같이 놀아달란 말을 부탁했을 뿐.

하루하루 살이 빠져가고 안색이 어두운 그가 어떻게 찌들고 있었는지 알수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고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상자까지 열어볼수가 없어. 나는 지금 나로도 버거워. 했으니까.


근데 여자의 촉이란게 무서운건지

삼주 정도 지난뒤에 나는 눈치를 챘다.

그가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와 잠이 들고

새벽5시에 울리는 진동소리.

받지않자 울리는 문자소리.

“잘 들어가셨어요? 오늘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냥 직감으로 알았다.

이거 여자다.


심장이 쿵쾅쿵쾅.

자는 그를 한번 더 바라보고.

제기랄 이것도 경험이 있다고 (예전 남자친구가 바람 핀적이 있었다.)

다른방으로 가서 연락처, 문자가 온 내역, 카드 거래내역까지 모두 살펴보고 캡쳐를 떠서 내핸드폰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그 핸드폰에서는 내게 갔다는 내역을 모두 지웠다.


결혼 초부터 이상했던 것들이 좀 많았는데

그는 개인 바운더리가 확실한 사람이였다.

어떤 선을 넘어가면 절대 안되는 사람.

많은 가족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나는 이상하다고 느낀게 참 많았다.

그건 차차 말하기로 하고..


그중 절대 이해못했던게 “통장공개“

죽어도 월급통장 오픈 못한다고 얼마나 눈을 뒤집으며 싸워대던지..

이걸 이해시킬려고 계속 싸워댔다.

부부란건 투명해야한다고. 왜 안보여주냐고.

남편 왈 “들어오는 돈 모두 내가 너한테 다 입금해주는데 왜 굳이 확인을 해야하냐. 나를 못믿어서 확인한다는 자체가 기분이 더럽다.”

이 말도 안되는 주장을 설득시키려 아주 논리적으로 별소리를 다해봤는데 죽어도 은행앱을 안열어줬다.


이게 나중엔 “그래.. 니가 뭔 자존심을 지키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와라.”라고 포기하게 됐었다.


나 등신아니다.

나 회사에서 회계로 4년을 일한 경력이 있다.

그런데도 이 불안한 인간이 일 안 때려치고 따박따박 벌어다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열린 판도라 상자는 걷잡을수 없던가.

카드 거래내역서,

은행 입금내역서를 확인해보니 가관이였다.

하늘이 이인간의 바람을 도와주려 한건지

한달새 많은 돈이 오고갔다.


월급, 세금환급금, 그리고 젤 기가 막혔던 시어머니에게 입금된 삼백만원.

그리고 이 사람은 이 수백만원을 삼주가 안되는 시간동안 그 여자와 함께

펑펑 썼다. 아주 펑펑.


내역을 보니 카페, 노래방, 밥, 술집, 타로카드집까지..

매일매일 회사가 끝나면 그 여자와 놀기바빴다.

그무렵 남편이 내개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랑 연애하고 싶어. 예전처럼 데이트말이야”

“나도 하고싶지.. 아이를 맡기고 밤에 자기랑 데이트하는게 꿈이야.”

아이를 맡길때가 없는 우리에겐 그림에 떡이였다.


그걸 누군가랑 채우고 있었네.


새벽내내 아이가 깰까봐 차가운 베란다에서

밤새 뒤적거리면서 별별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돈을 삼백이나 쥐어줬는지 확인해야했다.

그래서 연락을 끊은지 3년만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남편에게 준 돈 뭐예요?”

“어?그거 니 산후조리비야. 내가 열심히 모아서 보내준거야.”

“……………………….”

무슨말을해. 욕밖에 안나오는 상황인데.

“왜 무슨일 있니?”

“어머니 아들이 바람을 피웠네요. 어머니가 준 그 산후조리비는 저는 구경도 못했구요

그걸 삼주안에 다 써버렸어요.“

“뭐?????????”


연락 안하고 지낸 사연이야 풀면 길고..

한성격 하는 시어머니는 그뒤로 아주 쌍욕쌍욕을 해댔다.

제정신이냐고 그자식이 어쩌구 저쩌구.. 지 마누라가 지금 배가 불렀는데 어쩌구 저쩌구..

아들을 왜 이렇게밖에 못키우셨냐고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이 오고있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고민해야한다.



젠장.젠장.

나는 방금 알았잖아!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방금 알았잖아!

무슨 결정을 하라고.

뭘 어떻게 하라고.


일단 치가 떨리는 이 분노감에 미치겠는데

뭘 어떻게 해.




그가 깨어났다.






작가의 이전글1. 바람피운 남편을 살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