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여배우들, 여섯 명의 시체
내 이름은 우연. 한창 재기 발랄한 대학생이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우연(내 이름과 같다)찮게 나와 우리 엄마가 동시에 연극배우가 되고, 무대 위에 '아름다운 사인'이라는 연극을 올리기까지의 놀랍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ᆢ(그렇겠지? ^^)
나는 절대! 집에 안 붙어있고 싶어 하는 엄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참 많이도 엄마를 '쫓아'다녔다. 엄마는 본인이 즐기고 싶은 걸 나를 훌륭히 '육아' 또는 '케어'한다는 핑계로 집 근처 문화센터는 기본이고 국내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의 오만가지 체험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적어놓았고, 본인이 더 신나 하며 나를 '쫓아' 다니셨다.
그러던 내가 질풍노도의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예민하고 까칠한 고등학생 시절도 지나고ᆢ 비로소 대학생이 되자, 엄마는 갑자기 폭삭 늙으신 듯 보였다.
기숙사에서 돌아온 금요일 저녁, 나는 혼자 멍하니 안방 바닥에 앉아 계시던 엄마를 보았다.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요즘은 왜 도서관 안 가? 저번에 우리 집 정원사 프로그램인가 뭔가 텃밭 가꾸기 그것도 한다며ᆢ"
"응ᆢ 뭐 재미가 없다. 너도 없고ᆢ"
내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고 기껏해야 주말에나 겨우 집에 오게 되자, 몇 달 사이 엄마의 표정은 왠지 바다 가운데서 혼자 돌고 도는, 돛을 잃어버린 돛단배처럼 느껴졌다.
"엄마, 그러지 말고 연극 한번 해보는 거 어때?"
나는 집에 오다가 동네 도서관 문 앞에 붙여진 포스터를 불현듯 떠올렸다. 시민연극단 모집 공고였다.
'나이제한, 성별제한 없음. 직장인 및 주부 대환영.'
왠지 전철 안에 붙여진 살짝 의심스러운 광고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그 도서관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닌 곳이고, 사람 좋은 관장님도 잘 안다. 시장 바로 옆에 있어서 엄마 손 잡고 도서관 갈 때마다 엄마가 뻥튀기를 쥐여 주곤 했었다.
보통은 50대 엄마에게 딸이 이런 이야기를 할 일이 없겠지만, 나는 엄마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 엄마는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당장 눈빛부터 달라지는 스타일이다.
"응? 그래? 그럼 당장 신청해야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 먹은 미역처럼 보이던 엄마는 갑자기 어디선가 기력이 샘솟는 듯 보였다. 보통은 어디서 언제 어떻게 하는 거냐고 먼저 물어보지 않나? 하지만 엄마는 바로 신청 방법부터 물어보셨다. 흐. 역시 이럴 줄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