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두 여자의 엇갈린 역할
연극 '아름다운 사인'에서는 총 일곱 명의 여자 주인공(들)과, 두 명의 남자 악역과, 또 두 명의 여자 악역이 등장한다.
시체 검안사 유화이,
한동네 여자에게 남편 뺏기고 홧김에 자살한 조숙자,
암환자였는데 치료비용이 부담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귀인.
유부남인 줄 모르고 사랑하다 남자와 세상에 대한 환멸로 한강에 뛰어든 최정미.
자식 못 낳는다고 구박당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수민.
스펙이 부족해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이민서.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두이엔.
그리고, 이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조숙자 남편과 한수민 남편, 이민서의 취업 당락을 결정하는 면접관. 두이엔의 시어머니.
이렇게 딱 열한 명이 명이 등장한다.
우리는 총 아홉 명. 누군가 두 명은 멀티ᆢ각각 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주인공만큼이나 개성 있는 캐릭터, 눈길을 사로잡는 악역이 되어야 한다.
강렬한 조연이라ᆢ 아주 옛날, 초등학교 시절에, 크리스마스 즈음에 반에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극으로 만들어 발표한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주인공인 '스크루지 영감'을 맡아 많은 분량의 대사를 외우느라 낑낑대며 정작 연극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용한 성격의 같은 반 친구 '경선'이는, 스크루지 영감의 사업 파트너이자 죽은 친구인 '말리' 영감으로 분해 정말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선생님과 반 아이들에게 남겼고,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의 꿈에 나타나 스쿠루지의 외롭고 비참한 말년을 보여주며 "그건 바로 네가 초래한 거야!!"라고 외친다.)
내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경선이가 훨씬 많은 칭찬과 박수 세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 연극 공연을 담당한 연출님의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자, 이제 누가 시어머니와 면접관 역, '여자멀티'를 하실래요? 그리고 개방정 무공감 조숙자 남편과 우아한 쓰레기 한수민 남편역 '남자멀티'를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