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완전 다른 캐릭터 불륜 남이라니
톨스토이는 '안나 까레리나'의 첫 장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집안의 모습은 어디를 보나 비슷하고, 불행한 집안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극 '아름다운 사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유로 불행한 인생들을 살았다. 그중 세 명이 '불륜남' 때문에 고통받고 명을 달리했으며, 우리 엄마는 그 중 두 명의 과거회상 에피소드에 짧게 등장하는 각기 다른 두 명의 남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난. 얼른 엄마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엄마ᆢ 엄마는 '메다리(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등장하는 로버트역처럼 멋진 남자 역할을 하고 싶다며ᆢ 근데 꼭. 시골 마을에서 경운기 타고 한동네 여자들 다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나, 애 못 낳는다고 대놓고 여자를 구박하고 바람 펴서 애까지 생긴 '우아하지도 않은 쓰레기 쌍놈새끼'를 연기해야겠어?"
걱정이 된 내가 적극 만류하며 물었다.
"뭐, 그렇게 따지면 로버트도 멀쩡한 남의 가정 주부맘에 불 지른 불륜남아니니? 난 뭐 바람피우는 남자들 심정도 이해해 볼 겸. 남자 역할을 좀 해보고 싶네ᆢ"
엄마는 사실, 좀 지나치게 도전적인 면모가 있다.
게다가 난 '메다리'볼 때 잘생긴 '박은태 로버트'에 푹 빠져서 그런 건 생각 못했는데, 로버트도 따지고 보면 나쁜 남자가 맞긴 하다. 그래도ᆢ
"아니이.ᆢ물론 그렇긴 하지만ᆢ, 외모든 여자를 대하는 기본 매너든, 마지막에 프란체스카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물러나는 것 등등ᆢ로버트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재수 없는 두 남자들하고는 차원이 다르잖아!!"
우리 '은태버트'와 다른 불륜남들을 같이 싸잡아 보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뮤덕인 나는 흥분해서 외쳤다.
"자 자, 십 분 쉬었으니 이제 시작해 봅시다. 무대 위 동선을 좀 맞춰볼게요."
마침내, 20년간 연극무대에 섰다는 연출님의 목소리가 조그만 소극장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