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정필 Feb 07. 2023

1일 1 고기 괜찮을까

사진출처:네이버

“엄마, 오늘 저녁 반찬은 뭐야” 

해질 무렵 딸아이의 습관적 전화가 걸려온다.

“삼겹살 구울까 하는데.”

“야호! 꼬기라고. 오랜만에 만나는 꼬기야 기다려라”라는 말을 외치며 전회를 끊는다.

 우리 가족은 유난히 육 고기를 좋아한다. 그야말로 고기의 민주화로 1일 1 고기가 생활화되어간다. 식탁 주 메뉴의 대부분이 고기이지만, 부 메뉴인 날에도 고기가 들어간다. “고기 카레라이스, 고기 된장국, 소고기 뭇국, 돼지고기 김치찌개” 등 고기는 중요한 식재료이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채소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의 식생활을 조용히 닮아간다.

 내 어린 시절에는 기본 반찬이 김치였고, 그 외는 제철 채소가 밥상을 채웠다. 가족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생일날 소고기 미역국” 정도였고, ‘소’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의 이벤트가 비정기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고기가 넘쳐난다. 언제, 어디서든 고기를 접할 수 있고,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또한 다양해진 요리법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유혹한다. 우리 집 식탁에도 나날이 김치를 제치고 다양한 고기가 올라온다.


 나의 유년시절에는 고기가 흔하지 않았다. ‘소’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께서 장에 가시는 날, 장터에서 운 좋게 소 잡는 날이면 소 껍데기와 고기 몇 점을 사들고 집으로 오셨다. 시장에서 오신 아버지는 바쁘게 마당 귀퉁이에 숯불을 피우셨다. (아버지께서는 소 껍데기는 빨리 식기 때문에 불 옆에서 먹어야 식감과 고소함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숯불이 타오르면 부엌으로 가셔서 도마와 칼, 소금, 참기름을 들고 나오셔서 껍데기를 구우셨다. 구워진 고기는 아버지의 뭉툭한 칼질에 의해 참새처럼 입을 벌리는 우리들의 입으로 한 점씩 들어왔다.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도마 위에 고기가 푸짐하게 썰어지면 8남매의 젓가락질이 분주해진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기 맛을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은 그렇게 숯불 옆에 저녁상이 차려지고, 우리는 의도되지 않은 이벤트에 입이 즐거워졌다.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 투박한 말투에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셨지만,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가족을 챙기는 자상한 분이셨다. 그 시절 ‘소’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돼지고기는 못 먹어 봤어도, 소 잡는 장날이 오면 소고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소 껍데기를 많이 사 오셨을까? 그건 아마도 작은 돈으로 많은 가족을 먹이고 싶은 아버지의 ‘가성비’ 전략이었을 것이다. 


 지난달 건강검진 결과가 우편으로 왔다. 남편과 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지방간이 있다는 내용이다. 중년을 맞은 남편과 나도 걱정이지만,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 건강이 더 염려스러웠다. 지금 이대로 식생활을 유지한다면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 심혈관 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심하게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상을 차린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래서 나는 가족의 즐거움을 외면하며 식탁의 변화를 시작했다. “1일 1 고기에서 1일 1 야채샐러드”를 식탁에 올렸다. 가끔 있는 삼겹살 데이는 푸짐한 채소 쌈과 겉절이도 준비한다. 그러자 가족의 반발이 이곳저곳에서 나온다. 아들은 “엄마, 우리가 소 에요” 말하고, 딸은 “풀만 매일 어떻게 먹어”말하며, 남편은 “풀만 먹고 일 못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무언으로 대응하며 꾸준하게 채소를 식탁에 올린다. 물론 아이들에게 꼬기를 뺏을 수 없으니, 고기 먹는 날은 별도로 정해 두었다.  

  


 “지글지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삼겹살 굽는 냄새가 온 집안을 덮치고, 넘쳐 현관문 밖으로 나간다. “띠띠띠띠” 현관문 소리와 함께 딸아이가 들어오며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부엌으로 온다. 그러고는 한입 달라고 입을 벌린다. 프라이팬 위의 익어가는 고기 중 비계가 푸짐한 놈을 골라 입안으로 넣어준다. 딸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책가방과 함께 방으로 사라진다. 고소한 고기 냄새로 전반전을 치른 후, 가족들은 고기를 둘러싸고 식탁에 앉는다. 그리고 익어가는 고기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며 후반전을 치른다. 젓가락 전투가 치열하다. 삼겹살을  뒤집고 자르며 열심히 구워도 구멍 난 팬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1시간쯤 흘렀을까?  아들이 오른손으로 배를 두드리며 서서히 퇴장한다. 뒤이어 딸아이도 아쉬운 듯 젓가락을 놓으며 “엄마 찌개 다 되면 불러줘”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탁에 홀로 남은 남편은 소주병과 함께 남은 고기를 먹으며 ‘후식’인 김치찌개를 기다린다.      

 


 삼겹살을 구운 오늘, 딸아이의 아쉬운 젓가락질도, 아들의 “좀 쉬었다가 먹을게요.”라는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처럼 고기가 없어서,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건강을 위한 선택 하였기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잠시 접어둔다. 그리고 건강이 회복되고, 채소의 단맛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가족의 공공의 적이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늘 고기를 푸짐하게 먹었으니, 내일 아침은 신선한 야채샐러드와 과일을 한 접시 준비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그들만의 축제 교육인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