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딸아이의 성장 과정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심에서시작했으나, 나와 딸아이의 비밀을 밖으로 내보인다는 것이 글을 쓰는 내내 불편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부모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발행한다. 내 글을 읽는 중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엄마, 잠깐만 내방으로 와봐”
딸아이가 조심스레 나를 부른다. 저녁 식사 준비에 바쁜 나는 “나중에 갈게”라고 대답했지만, 연거 푸게 부르는 딸아이의 간절함에 결국 방으로 갔다. 아이는 당황해하는 얼굴로 “엄마, 드디어 시작했나 봐. 어떻게 해야 되지. 바지도 다 물 들었어.”라고 말하며 얼룩진 속옷을 보여준다. 나는 딸아이의 침대에 걸터앉아, “괜찮아,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우리 딸이 여자로서 성숙해 가는 중이야. 축하해”라고 말하고는, “밥 먹고 엄마하고 잠깐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먹은 후 나는 딸아이와 식탁에 앉아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생리를 왜 하는지, 주기는 어떻게 되는지, 생리대는 하루에 몇 번 교체해야 되는지, 버리는 방법 어떻게 하는지 등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딸아이는 “아~” 짧게 말하고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서 나는 눈을 부릅뜨며 “이제 네가 생리를 시작했으니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야.”라고 말하며, 임신에 대한 짧은 설명도 덧 붙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생리를 시작하여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딸아이를 축하해 줘야겠지만,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나도 어쩔 수 없는 보수적인 엄마였다.
딸아이의 생리 시작일 날 그렇게 디테일하게 설명한 이유는, 나의 첫 생리 때의 당황한 기억이 생각나서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이상 지난가을, 나는 중학생이었다. 시골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교에서 진행한 “농촌 벼 베기”행사에 참가했다. 벼 베기를 하는 장소는 우리 집과 좀 떨어진 ‘은편’이라는 동네였다. 현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시절에는 가을 추수에 일손이 부족한 집을,학교차원에서 전교생이 ‘벼 베기’를 지원했다. 그 당시 시골 중학생들은 집안의 일꾼이었기 때문에 벼 베기에 능숙한 아이들이 많았다. 8남매 막내로 태어난 나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농사일은 그의 하지 않아 낫질이 서툴렀다. 그래서 가을들판에 숨어서 벼 베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던 반 친구가 “야~ 너 바지에 뭐가 묻었어.”라고 말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바지에 검붉은 얼룩이 보였다. 창피한 마음에 얼른 목에 두른 수건으로 바지를 가리고 벼 베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해가 질 무렵, “자, 이제 집으로 가자”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급하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날 밤, 저녁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께서 “담벼락 사이 있는 거 조심해서 치워야 한다.”라고 한마디 하시고는 계속 식사를 하셨다. 순간 뜨끔했다. 벼를 베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지를 벗어 손빨래를 하고, 속옷은 고민을 하다가 똘똘 뭉쳐 돌담사이 몰래 끼워두었다.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아버지에게 들킨 것이다.
저녁 식사 후, 바로 위 6살 터울인 언니가 나를 부른다. 생리대를 주면서 앞으로 이걸 사용해야 하며, 떨어지면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언니는 내 속옷을 사 왔다. 엄마는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셨지만, 여자로서 나의 성장에 관여하지 않았다. 8남매 막내인 나는 엄마와 오십 가까운 나이 차이가 있었으며, 엄마는 여성으로 성숙해 가는 딸을 교육하기에는 시대적 차이와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엄마 대신 언니가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그때 언니가 있어 물질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여자로서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는 교육적 부재가 있었다.
저녁이 되자 집으로 온 남편이 멋쩍게 나를 부르며 “딸내미 방에 쓰레기 좀 깔끔하게 정리해야겠더라.”라고 말했다. 그 말에 얼른 딸아이 방으로 가보니 쓰레기가 너부러져 있었다. 조금 후 딸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다. 나는 딸아이 방으로 가서 검은 비닐봉지를 주며, 쓰레기는 꼭 여기에 넣어서 밖에 있는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부끄러운 듯이 “네”라고 짧은 대답을 한다. 나의 청소년 시절처럼 딸아이도 갑자기 생긴 몸의 변화로 적지 않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딸아이도 과거의 나처럼 알아서 척척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처음으로 ‘부모’가 되었고, 아이가 2차 성장을 하면서 ‘할머니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낀다. 요즘은 나의 청소년기와 달리, 세상의 많은 정보가 오픈되어있고, 누구나 접근가능하다. 그래서 청소년기 2차 성장에 관한 교육적 부족함은 줄었다고 할 수 있으나, 옳은 정보와 잘못된 정보를 구분하는 판단력이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자녀의 ‘성교육’은 가정에서 1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부모의 의무이다.
몇 칠이 지나면 나는 딸아이와 ‘성’에 대해 또 한 번의 대화를 나눌 것이다. 이 시기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계속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정서적으로 꾸준한 대화를 해야 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가 정서적. 신체적으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식은 밭의 농작물처럼 물과 영양만으로 커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듬뿍 주어야 잘 자란다.(혹, 부모님들 중 과거의 나처럼 잔소리를 ‘관심’으로 생각하는 착오는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