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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Sep 25. 2023

엄마 마음으로 한 발작 더 다가서기

출처:네이버이미지

청명한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을 품었다. 그렇게 가을을 그리다 보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을 ‘꾹’ 누른다. 한참 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누고?” 엄마의 첫마디,

“응. 필이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라고 묻자,

“아이구 야야. 내가 꿈자리가 시끄러워서 힘이 하나도 없다”라는 기운 빠진 목소리가 들린다.

“또 꿈을 꾸었나?”

그런 대화가 오가다가 전화를 끊는다. 맥 빠진 엄마 목소리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엄마를 케어하고 있는 둘째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의 말은 “요즘 엄마가 치매 증상도 좀 보이고, 새벽녘 꿈자리기가 시끄러워 아침에 일어나면 저렇게 힘이 없다.”라고 말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노쇠한 엄마가 가엾고, 현명함을 잃어가는 엄마의 모습도 안타까웠다.      


 우리 엄마는 ‘미신’을 믿는다. 여덟 자식을 키우다 보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라는 말처럼, 여덟 가지가 항상 무탈하지 만은 않으니, 엄마의 마음은 항상 걱정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엄마는 가족들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점’을 보는 먼 친척에게 물어보고, 처방을 받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팔 남매를 키우는 과정에서 엄마는 미신의 효력을 믿었으며, 마음에 적지 않은 위로가 받았다.   

  


 그런 엄마가 몇 년 전부터 ‘꿈’ 이야기를 계속했다. 엄마는 신경성 위염이 있어 주기적으로 나와 동행해서 병원을 방문한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자주 꿈 이야기를 했고, 꿈을 꾸고 나면 힘이 없다고 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좀 예민하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초 엄마가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초기 치매 증상을 보였고, 그 이후부터 엄마는 꿈 이야기를 더 자주 했다. 그래도 나는 ‘꿈이 꿈이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최근 엄마를 가까이에서 케어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설렁하듯 착 가라앉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엄마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짹짹이’ 셋째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는 예전부터 엄마와 기질이 비슷하고 미신도 같이 믿었다. 그런 언니의 말로는 ‘엄마가 죽은 사람의 꿈을 많이 꾸며, 꿈속에서 그 사람들과 이리저리 다니다 잠을 깨면,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의욕이 없다’라고 했다. 언니도 엄마가 걱정이 되었는지 잘 아는 ‘점’ 집에 물어보니, ‘굿을 해서 귀신이 엄마에게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벌써부터 언니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자신의 돈으로라도  ‘굿’을 해서 꿈을 안 꾸고, 편안하게 자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 마음 같지 않은 자식들은 과학적 근거도 없는 곳에 큰돈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식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엄마가 우울해하자, 자식들은 작은 돈으로 아는 ‘점’ 집에서 ‘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엄마는 꿈을 계속 꾸었고, 부적을 미더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식 돈도 아니고 자신의 돈으로 ‘굿’을 하겠다고 하는데, 못하게 하는 자식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미신을 잘 믿지 않는다. 유년시절 집에서 ‘굿’이라는 것을 여러 번 했고, 나는 그 모습들이 너무 기괴하고 무서워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청소년 시기에 교회를 잠깐 다닌 적이 있다. 그만큼 나는 무속신앙의 불편함이 있다. 그런 내가 ‘엄마 꿈’에 대한 이야기를 믿겠는가. 하지만 나도 자식인지라 혼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닌 엄마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원하는 것, 엄마 마음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날, 셋째 언니에게 전화했다. 모든 비용은 내가 낼 테니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라고 말하자, 언니는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로 ‘나는 점집에 방문하기 힘드니, 진행은 언니가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언니는 큰 새언니랑 의논하고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렇게 점집 상담 날짜가 잡혔고, 디데이도 잡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면, 아픈 사람 마음으로 한 걸음  다가가야 한다. 상처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내 생각이 주입되면, 그건 아픈 사람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이 된다. 앞의 일처럼, 엄마는 ‘아프다 ‘라고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자식들은 상처를 드려다 보지 않고 ‘참으라.’ 말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자식들 중 한 명이었지만, ‘아프다’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플로시보’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제가 아닌, 영양제를 처방하면서 ‘몸에 좋은 치료제입니다.’라고 얘기하면,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이 병세를 호전되는 현상이다. 엄마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면, 이미 엄마의 마음은 치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만의 하나 ‘굿’을 해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후회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드린, 내 마음이 흡족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나는 엄마에게 받은 것을 차츰차츰 돌려 드릴 생각이다.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 입고 싶은 옷, 가고 싶은 곳,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딸이 되고 싶다. 엄마가 우리에게 늘 그랬듯이.

이 일이 모두 끝나고 나면, “간밤에 잠 잘 잤어.”라는 내 아침 안부 전화에, “그래 잘 잤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싶다. 그렇게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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